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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피플

킹스맨을 꼭 닮은 영국문화와 예술 이야기를 말하다. 영국문화원장 마틴 프라이어

by 하나은행 2015. 8. 16.
Hana 피플

킹스맨을 꼭 닮은 영국문화와 예술 이야기를 말하다. 영국문화원장 마틴 프라이어

by 하나은행 2015. 8. 16.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킹스맨>. 귀족적 전통과 명예를 지키는 신사와 최첨단 장비, 위트로 무장한 에이전트가 공존하고 시종일관 매너와 발랄을 넘나든다. 지금 영국의 문화예술이 꼭 그러하다. 그들 고유의 차분한 감수성을 기반으로 동시대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더해진 뉴 브리티시 아트. 마틴 프라이어 영국문화원장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새로운 영국 이야기로 한국 대중과 마주하려 한다.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며 숱한 이야기와 상상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처럼, 한국과 영국 그리고 문화와 예술이 농밀하게 오가는 소통의 장을 꿈꾸며.

 

▲ 한국과 영국 사이에서 문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주한영국문화원

 

주한영국문화원이 2013년 개원 4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해 한국에 첫 부임하셨으니, 그 의미와 사명감이 자못 특별하셨겠습니다.

 

영국문화원은 1973년 개원 이래 한국과 영국의 문화예술 교류, 영어교육과 유학 협력, 사회공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두 나라 간 유대를 돈독히 다져왔습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한국 땅에 영국 문화를 알리고 전파하는 ‘문화 외교관’으로서의 소명의식도 점점 커지고 있지요. 지난 40년간 선임자들이 쌓아 올린 두 나라 간 이해와 신뢰를 올곧게 계승하고 더 크게 발전시키는 것이 제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 합니다.

 

 

Q. 영국에서 보신 한국과 직접 경험하신 한국은 어떻게 다른가요?
A.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화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변화는 비단 경제와 정보화에만 국한되지 않지요. 컨템포러리 아트, 건축과 패션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한국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하면 판소리나 사물놀이처럼 고유성 짙은 전통문화나 6.25전쟁 이후의 분단과 냉전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곤 했습니다. 마치 ‘아르헨티나’ 하면 으레 탱고부터 떠올리듯이 말이죠. 서양인, 특히 영국인이 지닌 한국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 영국 문화를 소개하는 일만큼이나 새로운 한국, 역동적인 한국 모습을 영국 대중에 알리는 일에도 열심이고 싶습니다. 저 스스로 문화 교류의 첨병으로서, 이전에 미처 몰랐던 한국의 면면을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그것이 영국문화원이 한국 땅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Q. 세계 3대 도서전으로 꼽히는 ‘런던국제도서전’이 지난해 주빈국으로 한국을 택한 것 역시 원장님의 그런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들었습니다. 문학을 비롯한 한국 문화의 고유성을 영국 대중이 어떻게 인식했는지 궁금합니다.
A. 영국 독자들에게 다른 나라 작가와 만나는 기회는 무척 소중합니다. 영국문화원은 황석영, 신경숙, 김영하와 같은 소설가부터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쓴 아동문학가 황선미, 《미생》으로 유명한 웹투니스트 윤태호까지 한국 문화의 넓은 스펙트럼을 대표하는 작가 10명의 ‘런던국제도서전’ 참가를 지원했습니다.

 

특히 매일 1,000만 명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 웹툰은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문화예요. 한국만의 독특한 이야기 문화인 셈이죠. ‘런던국제도서전’에서 영국인들은 윤태호 작가와 직접 만나 그토록 많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모든 문화와 예술은 결국 감동이라는 만국 공통어로 통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 기회가 됐죠. ‘런던국제도서전’이 한국 작가들과 영국 문화계 간 활발한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자부심도 크고요.

  

Q. 영국문화원의 문화 교류 사업에서 문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은 원장님의 관심과 견해가 반영된 결과겠지요?
A.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 도구입니다. 영국문화원이 영어 교육에 열심인 것도 그 때문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문학은 동서양을 떠나 인간과 삶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사유를 이끌어내며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도 물론 훌륭하지만, 한국 젊은이들에게 영국의 또 다른 대문호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일생에 걸쳐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거든요. 찰스 디킨스는 등장 인물들의 성격과 특징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가라서 인간사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관점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한국 대중이 문학을 비롯한 영국의 문화예술을 통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바랍니다.

 

 

Q. 지난해 <셰익스피어 인 오페라> 토크 콘서트에서는 직접 강사로 나서 영국 문화에 관심 있는 한국 대중과 소통하시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 인 오페라> 토크 콘서트는 지난해 10월 국립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기념해 한 주 앞서 진행됐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이 원형인 희곡을 넘어서 오페라와 무용, 영화 등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강의 후에는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캐스터가 공연의 주요 아리아도 미리 들려주는 시간을 마련했고요. 콘서트 내내 영국 문화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깊이 있는 이해도 놀라웠지만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배우려는 젊은 세대의 열린 마음이야말로 앞으로의 한국 발전을 이끄는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A. 주한영국문화원이 여느 매체와 교육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예술 정보와 토론의 장(場)을 꾸준히 마련해가겠습니다.

 

 

Q. 영국의 대표적인 가치를 전파하는 ‘GREAT 캠페인’이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GREAT 캠페인’이 담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가치란 무엇일까요?

A. 영국 국민에게 2012년은 무척 의미 있는 해였습니다. 런던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 6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기념해 영국 정부는 전세계에 영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가치를 소개하는 ‘GREAT 캠페인’을 2015년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GREAT 캠페인’은 영국의 문화유산과 스포츠, 패션에서부터 기업가 정신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아우릅니다. 이를 통해 이미 누구에게나 익숙한 영국을 뛰어넘어 혁신적이고 재기발랄한 영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Q. 주한영국문화원은 ‘GREAT 캠페인’의 일환으로 어떤 활동을 벌이고있나요?

A. 주한영국문화원은 그 일환으로 영국의 인문과 사회, 경제, 과학, 예술을 선도하는 명사들의 ‘지식 강연 시리즈(Education is GREAT Public Lecture Series)’를 마련해 한국의 젊은이들과 지식과 경험, 창의적인 사고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3월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리더십 : 내일의 스킬과 성공적 커리어’를 주제로 열린 10번째 강연에는 영국문화원의 예술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그레이엄 셰필드(Graham Sheffield) 본부장과 롯데콘서트홀 김의준 대표가 시너지를 이뤄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셰필드 본부장은 문화예술분야의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과 덕목을, 김 대표는 공연장 운영과 경영을 도맡아 강연했지요. 영국과 한국의 문화예술 리더십, 큰 틀의 방향성과 실질적인 방법론이 넘나들며 교차하는 특별한 소통의 자리였습니다.

 

 

Q. ‘GREAT 캠페인’은 아니지만 ‘페임 랩(Fame Lab)’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가 과학과 수학, 공학 분야의 주제를 가지고 3분간 자신의 생각, 경험 등을 강연하는 행사입니다.

A. 단순히 과학적인 지식 공유가 아니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 글로벌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발굴하자는 데 뜻이 있습니다. 페임 랩은 전 세계 영국문화원에서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데요, 한국 대회 우승자는 해마다 런던에서 열리는 페임 랩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됩니다. 앞에서도 강조했든 예술이든 과학이든 모든 문화 교류의 시작은 언어, 그리고 소통입니다.

 

▲(좌) 마틴 프라이어 원장은 한국에서 접하고 느낀 문화예술을 영국에 알리는 일 또한 자신의 소명이라 말한다.   ▲(우) 평소 도자에 관심이 많다는 그가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컬렉션

 

 

Q. 런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 즐비합니다. 테이트 모던, 사치, 화이트채플 등등 미술관마다 보여주는 독특한 색깔은 원장님께서 강조하시는 영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A. 전통과 역사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나라답게 영국의 미술관들은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고대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서양 문화사적 주제에만 집중했습니다. 20세기 영국은 대중음악은 물론 패션과 디자인에서 앞장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지만, 유독 미술에서만큼은 과거에 경도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yBa(young British artists)’라 불리는 작가들의 등장으로 오늘날 영국 미술은 몰라보게 다채로워졌습니다. 그들은 동시대의 미국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영국 특유의 문화적 감수성을 반영한 작품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근까지 이어진 영국 정부의 대학 교육비 지원도 영국 현대미술이 성장하는 데 한몫했죠. 상류층 자녀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미술 교육이보다 폭넓은 계층으로 확산되면서 작품들이 그 성격과 주제 면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맞게 되었으니까요.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과 공공 미술기관의 성장으로, 영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그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Q. 영국 현대미술을 한국에 소개하듯이 반대로 영국에 소개하고 싶은 한국의 문화와 예술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공연을 보러 다니곤 합니다. 얼마 전 혜화동을 찾았는데 골목마다 크고 작은 독립 극장들이 모여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다수 대중을 위한 대형 극장뿐 아니라 소수의 취향까지 배려한 작은 공연장이 모여 있고, 사람들이 그런 실험적인 공연을 즐기는 데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문화적 토양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극과 판소리 공연도 신선했습니다. 특히 공연 도중 관객들이 ‘추임새’로 호응하는 것이 무척 흥미롭더군요. 무대와 관객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예술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유럽에서 공연이 끝난 뒤 외치는 ‘브라보!’와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무대와 관객이 마치 하나가 되어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 나라의 전통 도자를 수집하는데, 한국에서는 고급 도자보다는 막걸리 병이나 밥사발처럼 생활 도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형태와 색감에서 결코 과하지 않은 유려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단아한 동양적 미(美)의 표본이지요. 한국의 컨템포러리 아트도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수준이 대단해요. 앞으로 하나씩 견문을 넓혀갈 계획입니다.

 

▲ 마틴 프라이어 원장은 최근 심취해 있는 한국 작가로 황석영을 꼽았다.

 

 

Q. 영국문화원장으로서 한국에서 꼭 이루시고 싶은 바람이나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A. 2012년에 이어 올해 다시 기획된 ‘한·영 큐레이터 교류 프로그램’처럼 영국과 한국의 예술가와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서로 아이디어와 경험을 교류하며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주한영국문화원이 두 나라의 문화예술 플랫폼이 되는 것이죠. 영국문화원이 준비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전통과 역사의 영국을 넘어 재기발랄한 새로움이 넘치는 동시대의 영국까지 더 가까이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글·김미선 | 진행·윤성혜 | 디자인·우선영 | 사진·한수정 | 도움·주한영국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