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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피플

비누조각, 대응과 번역에 대한 신미경의 시선

by 하나은행 2015. 7. 27.
Hana 피플

비누조각, 대응과 번역에 대한 신미경의 시선

by 하나은행 2015. 7. 27.

조각가 신미경

조각가 신미경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한국에서 두 번 의 개인전을 열며 젊은 작가로 주목받았으나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열망으로 영국 유학길에 올라 런던대 슬레이드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조각전공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유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학교 본관에 있던 오래된 조각상을 복원하는 과정을 보면서 조각상에 쌓인 시간의 흔적과 문화적 가치에 주목하게 됐으며, 그 조각상을 모각하면서 비누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역사적 유물과 예술품을 비누로 재현하는 ‘트랜스레이션’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 런던, 대만,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3년 SBS문화재단과 국립 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은은한 향기가 느껴졌다. 비누로 만든 작품이 내뿜는 향기다. 조각가 신미경은 박물관에서 볼 법한 고전 작품을 비누로 재현한다. 일종의 번역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정확히 번역·재현한다 해도 다다를 수 없는 애매한 차이, 그 간극에 주목한다. 그 간극을 인정하는 것에서 그녀의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문화적 유물들이 서로 교류될 듯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익숙한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며 다양한 번역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추구하는 신미경 작가를 비누 향기 가득한 런던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트랜스레이션 시리즈>, 런던 사치갤러리 2012년 '코리안 아이' 전시 장면

Q. 작품 재료인 비누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비누라는 재료는 조각에 적합하지 않을 듯한데 오랜 시간 비누로 작업해오셨어요.

처음 비누로 작업하기 시작한 건 1995년, 영국에 유학 온 뒤 1년 반이 지났을 때예요. 영국에 와서 보니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랐어요. 마치 서양 미술만이 정답인 것처럼 이들의 미술사를 배우고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이렇게 다른데, 미술도 달라야 하는데, 왜 우린 이들의 미술에 이렇게 관심을 가졌던 걸까 생각했고, 그 연유를 찾기 위해 제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스스로의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만의 좌표를 찍고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바로 비누라는 재료를 생각한 건 아니에요. 여기저기 미술관을 다니면서 책에서만 접하던 고전 조각상을 실제로 보는 게 신기했는데, 오래된 서양 대리석 질감이 제게는 비누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곧 제가 여기서 나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학교에 있던 조각상을 복원하는 과정을 보게 됐어요. 지금은 고전이지만, 당시는 동시대성을 가졌을 작품을 보면서 ‘가치라는 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위 ‘out of date’라고 하지만 서양 고전 조각은 권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놓여 있는 곳의 전통과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가치가 제게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자유롭게 그들의 권위와 전통을 비틀어보고 싶었어요.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권위와 전통을 내일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비누로 재현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맥락들이 맞물리면서 비누로 조각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어릴때부터 서양의 고전조각을 모각하는 훈련을 하며 한국의 대학 입시를 치른 터라 고전 조각을 똑같이 모각하는 것은 제게 아주 쉬운 일이었어요. 서양에서는 고전적인 행위였겠지만 제게는 동시대성이 느껴졌달까요? 그렇게 해서 처음 나온 비누 조각 작품이 <아프로디테>예요. 학교에 있던 그 조각상 바로 옆에서 6개월 동안 하루 10시간씩 작업했어요. 동양에서 온 여자 작가가 자신들의 고전 작품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 걸 보여주는 퍼포먼스 성격이 컸죠.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새로운 걸 만들었다기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어요.

 

<아키타입 시리즈>, 런던 사마리아 런 갤러리 2013년 개인전 장면

Q. 비누와 더불어 ‘고전’과 ‘번역’은 신미경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2002년 서양의 대리석상부터 동양의 도자기와 불상까지, 박물관에서 볼 법한 고전 시리즈를 ‘트랜스레이션(translatio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해왔어요. 어째서 고전이었나요?

1990년대 영국은 yBa(young British artists) 영향 아래 전혀 새로운 개념미술이나 설치미술을 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한 흐름이었어요. 더 이상 누구도 전통적인 재료를 이용한 회화나 조각을 다루려고 하지 않았죠. 저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너무 오래돼서 지루하고 의미 없다 여기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본 거죠.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 작정하고 스펙터클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을 새로운 시선과 태도로 바라본 거예요. 현대미술의 범위 밖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걸 다시 현대미술로 끌어들인 셈이죠. 수공예적인 노력을 더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더 정교하게 고전을 복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웅크린 비너스>, 2002년 작, 헌치오브베니슨 갤러리 2011년 개인전 장면

Q. ‘트랜스레이션’의 사전적 의미는 번역입니다. 신미경의 작품에서 트랜스레이션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번역에는 항상 대응물이 존재해요. 그런데 어떻게 번역해도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줄어들지 않죠. 번역 수단이 무엇이든 간에 두 대응물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다는 말이에요. 서로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이죠.

제게 있어서 번역은 두 대응물이 얼마나 같은가 하는 측면보다는 번역 할 수 없는 부분에 관심이 있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오히려 최대한 똑같이 재현합니다. 그러나 빈틈없이 똑같이 재현했다 하더라도 어딘가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간극, 또는 제 3자에 의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불이해’에 주목하는 것이죠.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애매함을 다른 매체로 느껴지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도자기를 도자기로 똑같이 만들면 그건 ‘가짜’일 뿐이지만, 도자기를 비누로 만들면 그게 다시 ‘진짜’가 되겠죠. 저에게 있어서 ‘트랜스레이션’은 결국 두 대응물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예요. 둘 사이에 완벽하게 치환될 수 없는 공간이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단지 언어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등 우리가 상대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사이의 괴리를 말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미술로 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트랜스레이션-쿠로스 시리즈>, 2009년 작

Q. 고전 작품을 복제한 비누 조각품이 번역 과정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차이를 보여주는, 일종의 증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처음 미술을 배울 때 석고상을 똑같이 그리고 만들어내는 작업은 마치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서양의 미술을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었어요. 모작이라는 건 분명히 한계가 있어요. 번역할 때 아무리 의역을 한다고 해도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요. 전시장에서 비누 향기는 그 차이를 극대화해요. 책으로 작품을 접하는 것과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는 것 사이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예요. 또 향기라는 속성은 시간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로서 기능하기도 해요. 저는 작품을 만들 때마다 다른 향을 선택하는데, 예전 작품들을 마주하면 향기때문에 그것을 제작할 때의 상황이나 기억이 어김없이 되살아나요.

 

<트랜스레이션-고스트 시리즈>, 런던 헌치오브베니슨 갤러리 2011년 개인전 장면

Q. 비누로 만든 조각상이나 불상을 공공화장실 세면대 옆에 설치한 ‘화장실 프로젝트’는 전시장에 놓인 작품과 달리 관람객이 작품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관람객에게 비누로 사용된 작품이 다시 전시장의 작품이 된다는 것도요.

화장실 프로젝트 이전까지는 비누를 갈아 반죽해서 모델링하는 방법으로만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캐스팅 비누를 발견하게 됐고, 그 후에 화장실 프로젝트를 하게 됐죠. 기계처럼 똑같이 찍어낸 것들은 예술적 가치가 없지만 각기 다른 장소의 화장실에서 본래 비누의 실용적인 기능으로 쓰이고 나면 하나하나 다른, 독특한 가치가 생기는 거예요. 일상에서 쓰는 보통 물건이 유물이 된 거죠. 지금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도 처음부터 유물로 태어난 게 아니라 과거에는 분명히 일상에서 쓰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박물관 선반으로 옮겨지는 순간 그 물건은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시간은 정지되며 유물로서의 삶을 살게 되잖아요. 화장실에 있는 비누 조각상은 손을 씻을 때 사용하는 비누일 뿐인데, 전시장으로 옮겨지면 더 이상 비누가 아니라 손 대면 안 되는 작품이 되죠. 보통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돌 조각이 오백 년, 천 년 지내온 시간을 비누는 훨씬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보여줘요. 그리고 똑같은 비누 조각이라도 놓인 장소에 따라 닳는 모습이 제각각이에요.

영국과 한국 화장실에 둔 조각상을 다시 전시장으로 가져와 한눈에 비교하는 것도 제가 의도치 않았던 결과여서 재미있었어요. 화장실 프로젝트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유물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런던에서 처음 캐빈디시 광장에 세워진 ‘비누로 쓰다 : 좌대 프로젝트’는 풍화 프로젝트의 상징적인 작업입니다. 두 프로젝트 모두 흐르는 시간이 중요한 주제이고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기마상. 무려 1.5톤 가량의 비누로 제작된 이 기마상은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런던 캐빈디시 광장에도 설치된 바 있다. 작가는 ‘시간에 따라 부분적으로 녹고 풍화되고 변형되는 자체가 예술의 일부이며, 그 역시 시간이 만들어내는 가치’라 여긴다.

Q. 보통 가치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 기준이 명확하진 않지만 어떤 가치를 변치 않고 오래된 것 혹은 획기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나누는 식으로요. 하지만 신미경의 작품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의 가치 또한 인정하는 것으로 보여요.

저는 일상의 물건과 유물의 차이가 시간과 그 시간을 거쳐간 사람들의 삶에 있다고 봐요. 물건 자체가 가치 있는 게 아니라 그 물건에 시간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거죠. 박물관에서 책으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보면서 ‘박물관에 있는 유물의 가치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라고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이후에 많은 것들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죠. 미술이 굳이 새롭고 쇼킹한 걸 만들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뻔한 것이라도 내가 어떻게 다르게 보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면 되죠. 미술은 발명품처럼 이전에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영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입장과 태도가 왜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트랜스레이션-쿠로스 시리즈>, 2009년 작. 런던 헌치오브베니슨 갤러리 2011년 개인전 장면.‘쿠로스’는 그리스어로 ‘청년’이라는 뜻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보이는 청년 나체 입상을 가리킨다.

 

<트랜스레이션-고스트 시리즈>, 런던 헌치오브베니슨 갤러리 2011년 개인전 장면

Q.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조각을 처음 시작하고 배웠지만, 영국에서의 경험이 신미경을 대표하는 작업의 단초가 됐어요. 여전히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데, 두 도시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요?

세계 여기저기서 전시를 하다보면 같은 작품이라도 관객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에 주목하게 돼요. 그것이 소위 문화번역자로서의 흥미로움이고 동기이기도 합니다. 과거 실크로드 시대에도 도자기가 서양과 동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동경하고, 또 오해도 만들었던 상황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서로 도자기가 개발·제작되었고, 또 그것을 수출입하며 소비한 것이죠. 그건 영국의 미술관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소위 중국풍(chinoisery)이라 불리죠. 그런 면에서 제 작품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관객들을 만나는 게 재밌어요. 관객의 문화적 배경은 그 작품을 이해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이해의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상상하기 어려운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이 제 작업에 대해 보이는 해석이나 반응은 제게도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트랜스레이션 시리즈>, 런던 헌치오브베니슨 갤러리 2011년 개인전 장면

Q. 영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지만 특히 2011년 헌치오브베니슨(Haunch of Venison) 갤러리 개인전에서 3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3년에는 SBS문화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서 큰 전시를 선보이기도 하셨죠.

영국에 처음 온 지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처음에는 맨땅에서 시작하느라 어려웠고, 낯선 동양인으로서 이곳 사회를 읽는다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언어나 비자 문제를 해결하느라 에너지 소모도 많았고요. 아직도 본론으로 들어간 느낌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2011년 헌치오브베니슨 갤러리에서의 전시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제대로된 최상의 조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그 장소가 이전의 인류학 박물관이었기 때문이죠.

전시 이후에도 그 전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영국에서의 활동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작품을 총망라해서 전시했기 때문에 제가 하려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던 것도 같아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13년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서 열었던 전시도 한국에서 했던 회고전 성격의 전시였습니다. 올해는 독일, 내년에는 프랑스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어요.

Q. 매년 많은 전시에 참여해오셨어요. 항상 전시 준비로 바쁘시겠지만 여가는 어떻게 보내나요?

하루 작업을 마치면 다음 날까지 거의 쉬기만 해요. 작업 자체가 직업이자 취미이면서 모든 것이기 때문에 그 외 다른 취미가 있진 않아요. 물론 특별한 취미가 있는 작가도 있겠지만 제 주변에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가끔 거리를 두고 작업을 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죠. 지금이 그래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을 되돌아보고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곱씹어보고 있어요. 다음에 있을 전시 준비로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요즘은 여행을 많이 하고 있어요.

Q. 비누라는 재료로 얼마나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싶은데 20년동안 끊임없이 다른 작품을 선보였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요즘은 건축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아요. 풍화 프로젝트를 건축물로 발전시키려고 해요. 비누로 건축물을 만들고 그 안에 이전의 제 작업을 빼곡하게 집어넣어 그 자체가 미술관이 되도록 만드는 거죠.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경이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처럼요. 건축물 형태는 캐비닛이 될 거예요. 우연한 기회에 17세기 이탈리아 건축물을 축소해 만든 캐비닛을 발견했는데 아주 흥미로웠거든요. 결국 그 캐비닛이 다시 확대돼서 건축물이 되는 거죠. 건축물을 비누로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하려고 전문 건축가와 협업했어요. 그런데 비누로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고 어떻게 짓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워낙 비누를 오래 다뤄온 터라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역학적인 문제를 건축가와 함께 조율하면서 해결했어요. 아트 카운슬(Art Council)에서 허가를 받기 위해 구조 안정성을 증명하는 데만 거의 2년이 걸렸어요. 다행히 아트 카운슬에서 연구 기금을 받아서 실험도 하고 모든 계획을 마무리 할 수 있었어요.

Q. 혹시 비누 말고 새로운 재료를 사용할 계획은 없나요?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작업을 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물론 다른 재료로요. 제 작품에 얽혀 있는 여러 층위들의 맥락이 한꺼번에 읽히지 않으면 제 작품은 그저 아주 단편적인 ‘정교한 비누 조각’으로 보일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다른 재료를 통해 보다 부각시켜 보여주고 싶어요. 그럴 때인 것도 같고요.처음 비누 작업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가 보여서 여기까지 전개가 되었네요. 앞으로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늘 도전적으로 새로운 자세를 취하려는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글·김영우 | 진행·장선애 | 디자인·최연희 | 인물 사진·최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