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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컬쳐

정신과 시야는 가둘 수 없다. 들라크루아와 콜드플레이

by 하나은행 2015. 3. 31.
Hana 컬쳐

정신과 시야는 가둘 수 없다. 들라크루아와 콜드플레이

by 하나은행 2015. 3. 31.

‘선동’, ‘죽음’ 그리고 ‘자유’. 영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이 공개됐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몇 가지 단어들입니다. 커버 가득 메우고 있는 그림의 출처를 모르더라도, 중앙에 쓰인 글귀를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들이 준비한 열 곡의 노래를 다 듣지 못했어도, 우리는 이 앨범에서 어떤 메시지를 감지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느낌을 공유합니다. 예술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명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정신과 시야는 가둘 수 없다’는 것일 테니까요.

 

2008년 발매된 콜드플레이의 4집의 앨범 커버

# 인생과 죽음, 그 양가의 짝패

 

어딘가 익숙한 그림입니다. 흩날리는 국기 아래 사람들의 사기를 돋우는 당찬 여인, 그녀의 드러난 알몸은 성적인 자극을 준다기보다 강인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입니다. 19세기 프랑스 독재 왕정에 반발한 시민들의 혁명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이지요. 정치적인 목적을 띤 최초의 근대 회화로도 평가받는 이 그림은,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로 사건을 묘사했습니다. ‘정도에 넘치지 않게, 고상한 미덕과 교훈적인 내용’만을 그리는 고전주의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들라크루아의 예술적 시도와 맞물려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들라크루아는 당시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화가, 감정에 솔직한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낭만주의자였습니다. 화가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남작 직위에도 올랐고요. 그런데 혁명이 일어나고 몇 년 후, 돌연 센 강에 몸을 던집니다. 예술과 사회에 대한 염증 때문이었지요. 그는 짧은 인생을 마감했지만, 죽음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신의 왼쪽에 총을 들고 있는 남자가 바로 그의 자화상인데요. 150년이 흐른 뒤 어느 록 밴드의 앨범 전면에 서서 두 번째 전성기를 누립니다. 바로 지난 2008년에 발매된 콜드플레이의 입니다.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은 프랑스 혁명군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데,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영상입니다. 들라크루아의 작품처럼 오래된 유화 느낌을 그대로 살렸는데요. 시간이 지나 갈라진 화폭의 미세한 틈이나 음악과 함께 유유히 흐르는 그림 조각들이 노래와 썩 잘 어우러집니다. 2000년에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한 후,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해온 콜드플레이의 속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나중에 묻더라도 그들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판매 시작 3일 만에 영국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더니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했으니까요. 콜드플레이는 이 앨범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앨범’이라는 칭송을 받고,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인 유투(U2)를 제치고 그래미 어워즈 최우수 록앨범상을 수상합니다.

사실 이 앨범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자유의 여신과 앨범 중앙에 쓰인 문구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이지요. 멕시코 여류화가인 프리다 칼로는 건강이 악화되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림에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감명받은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은 이 문구를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정했습니다. 

“그 모든 악재를 다 당하고도 다시 캔버스를 펼쳐놓고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그녀의 배짱이 매우 존경스러웠다.”

결국 들라크루아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빌려 콜드플레이가 말하고자 했던 건, 인생이란 큰 그림에서 저마다 치열하게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제 잠시 덮어두었던 앨범 타이틀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예찬 혹은 죽음과 그의 모든 친구들’이라니, 이 얼마나 친절하고도 안전한 장치인지요.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겠다는 그들의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제목이지요. 멤버들은 공식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앨범을 듣고 나중에 제목을 정하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마치 엔딩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책처럼, 우리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어떤 트랙을 고르고 앞뒤 순서로 듣느냐에 따라 앨범 제목이 달라진다. 슬픈 앨범으로 느끼고 싶으면 타이틀은 ‘Death And All His Friends’로 붙이고 특정 트랙을 건너뛰면 된다. 반대로 좀 더 밝은 앨범으로 느끼고 싶으면 들어야 하는 곡이 바뀌고 제목도 ‘Viva La Vida’가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노래를 들어보면, 양면의 동전을 던져 원하는 쪽을 손바닥 위에 놓으면 된다는 식의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두 노래의 겉과 속이 보이는 것과는 다를 수 있거든요. 

“난 세상을 지배했었지, 내가 명령하면 바다도 솟아올랐어. (중략) 나는 한때 열쇠를 가진 이였지. 하지만 이제는 벽에 갇힌 신세가 되었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네, 내가 살던 성이란 모래와 소금기둥에 불과했다는 것을.” 

‘Viva La Vida’는 세상을 다 가진 왕이 죽음 앞에서 읊조리는 독백을 통해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들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없음을 노래합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증명하는 꼴이지요. 반대로 ‘Death And All His Friends’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싸우기만 하고 싶진 않아. 돌고 도는 복수의 고리를 원하지 않아.

죽음과 그의 모든 동료들을 따르고 싶지 않아”라고 선언하며 차가운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합니다. 인생과 죽음, 그 양가의 짝패. 결국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사랑하는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예술에 대한 번민과 세상에 대한 연민, 그 가운데 서 있는 우리들이 콜드플레이의 앨범에 공감하고 찬사를 보낸 이유일 것입니다. 


글·오혜진 | 진행·이소진 | 디자인·김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