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을 보면 나라가 보인다! 국가별 재미있는 동전이야기
# 일상을 만드는 조용한 톱니바퀴, 동전
신용카드와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이른바 ‘핀테크’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카드와 모바일 결제가 워낙 편하다보니 현금은 커녕 지갑조차 두고 다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우만 해도 현금으로 결제한 것이 언제쯤인지 당최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지폐도 이러한데 하물며 동전은 오죽할까요. 출근길 버스요금을 낼 때, 점심 먹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을 때, 오락실에서 게임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동전이지만 요즘은 일상에서 찾아보기가 도통 쉽지가 않습니다. 어린 시절 하루 용돈 백원이면 오락실에서 게임 한 판을 즐기고 쮸쮸바 하나를 먹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네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 됐지만 동전은 우리 기억속에서, 가끔은 일상 속 작은 재미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인 수집의 대상이 되기도 하구요. 오늘은 동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한 나라의 화폐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있다는 사실, 잘 알고 계시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들의 동전은 어떤 모습이고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도시의 성장과 함께 탄생한 동전
지금에야 지폐와 동전이 나라마다 똑같은 모양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화폐가 없던 옛날에는 물물교환하거나 조개껍질, 소금 등 물품화폐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교환 횟수가 늘어나고, 교환한 물건의 보관과 운반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보다 쉬운 거래를 위한 화폐가 탄생했습니다.
초창기 화폐는 금속이었습니다. 물물교환에 비해 이동성, 보관성은 좋았지만 일정한 모양이 없어 통용되기 어려웠는데요. 때문에 금속을 녹여 일정한 무게와 모양으로 화폐를 만든 ‘주조화폐’ 가 실질적인 화폐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조화폐’는 쉽게 말해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동전’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약속된 똑같은 모양으로 주조해 누구나 같은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죠.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동전은 어디서부터 사용했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700년 소아시아에서 그림을 새겨 넣은 납작한 금속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세계최초 동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대공황, 실패의 늪에서 캐나다 인들을 일으킨 ‘범선’
주조화폐의 등장과 함께 동전이 실질적인 화폐로 통용되면서 각 나라들은 자신들만의 특색 있는 동전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적 위인을 새겨 넣는가 하면, 신화와 동물, 대표적인 상징물들을 동전 도안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그 나라 국민들 모두가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자주 쓰는 동전에 의미있는 문양과 내용을 새겨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첫번째 소개해드릴 나라는 바로 캐나다인데요. 캐나다의 10센트 동전 뒷면에는 ‘범선’, 즉 ‘배’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물도, 동물도, 그렇다고 대표적인 명소도 아닌 범선이 동전 안에 새겨진 사연은 무엇일까요?
동전 뒷면의 범선은 블루노즈(Bluenose)라는이름을 가진 고기잡이 겸 경기용 스쿠너(Schooner)입니다. 1921년 만들어져 5년 연속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배인데요. 그 후에도 무려 17년 동안이나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며 캐나다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준 범선입니다.
유독 이 범선의 승전보가 캐나다인들에게 큰 힘이 된 건 당시 캐나다가 대공황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실패와 좌절만이 가득했던 당시 경제 상황 속에서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전해주는 블루노즈호는 캐나다 사람들에게 자긍심과 자신감을 키워줬습니다. 답답한 상황 속에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는 통쾌한 승리였던 것이죠.
불안한 시기에 캐나다인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안겨준 블루노즈호는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1955년 최초로 사람이 아닌 배의 자격으로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고, 이후 우표, 동전 등에 오르며 캐나다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캐나다 사람들은 이 10센트 동전을 보며 블루노즈호가 거뒀던 승리의 역사를 떠올리며 자긍심을 다진다고 하네요.
# 미국 개척사를 이끈 인디언 여인, ‘사카가위아(Sacagawea)’
두번째 소개할 동전은 많은 분들이 자주 접해보셨을 미국 1달러 동전입니다. 미국 1달러 동전에는 투박하지만 또렷한 눈매를 가진 여성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요. 그녀는 미국 개척사에 존경 받는 원주민 ‘사카가위아’ 입니다.
그녀는 1805년과 1806년에 걸친 루이스와 클락 탐험대의 통역자겸 안내자로 활약한 인디언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활약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국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시기에 활약했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무용담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릴 적 히다차 부족에게 납치되어 그들과 함께 살게 된 인디언 여인 사카가위아. 그는 당시 미국대통령에 의해 서부개척과 루이지애아 지역 매입을 위해 탐험중이던 미 육군 중위 루이스와 클라크 중위의 탐험대에 서쪽여행의 통역자로 고용되어 그들의 여행에 동행하게 됩니다.
1년동안의 험난한 탐험 속에서 그녀는 대원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위기의 순간이 닥쳐올 때마다 활약했습니다. 인디언들의 위협 속에서는 통역으로 평화롭게 해결하는가 하면 긴 탐험 길에 식량이 떨어지거나 대원들이 병들었을 때 인디언 여인의 지혜를 발휘해 야생양파와 식물뿌리 등을 약초로 활용해 그들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의 공으로 탐험대는 목적지인 오리건 지역의 태평양 연안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미국은 사카가위아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2000년부터 그녀를 1달러 도안에 넣어 주화를 발행했습니다. 이 주화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만 발행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나 부인들의 얼굴을 새겨 넣은 도안 속에서 그녀의 등장은 이례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 500원속에 담긴 품위와 고고함, 학
세번째는 대한민국의 500원짜리 동전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500원짜리 동전에는 영험한 동물로 알려진 학이 그려져 있는데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학을 신성한 동물로 대해 왔기에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은 천연기념물 202호로 지정된 겨울철새로 우리나라에서는 선비의 고고한 자태, 평화와 장수를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입니다. 옛 선조들이, 특히 선비들이 그림을 그릴 때 사군자와 함께 학을 선호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학이라는 동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동물로 여겨져 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500원짜리 동전에 학이 그려진 것은 이 동전이 처음 발행된 지난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폐에는 우리 역사 속 중요한 위인들이 그려져 있고, 500원짜리보다 가치가 낮은 100원짜리에도 역사 속 인물이 그려져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500원짜리에 학이 그려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지만 성스럽고 영험한 동물로 여겨진 학. 우리 국민들이 학처럼 고고한 모습으로 반듯하게 살기를 바랬던 마음을 담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작은 동그라미 속에 문화가 담겨있다
갈수록 동전과 지폐 등 실물 화폐를 사용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지만, 화폐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들 비슷했나봅니다. 특히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게 되는 동전의 경우는 무엇보다 자주 접하는 것이기에 친근하면서도 의미있는 소재들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자결제나 카드결제가 보편화됐지만 과거 우리에겐 지폐와 동전이 생활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자주 보고 소중히 대하는 존재이기에 더 깊은 의미를 담고자 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우리가 곁에서 쉽게 보고 지나치는 동전, 그냥 지나치기보다 그 속에 그려진 것이 무엇인지, 또 그 속에 담긴 나름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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