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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컬쳐

의인(義人)이 그리운 시대, 조선의 여검객을 만나다.

by 하나은행 2014. 12. 17.
Hana 컬쳐

의인(義人)이 그리운 시대, 조선의 여검객을 만나다.

by 하나은행 2014. 12. 17.

‘쌍검대무’, 신윤복, 종이에 담채, 28.2×35.2cm, 간송미술관 양손에 칼을 든 무녀들이 악공들의 연주에 맞춰 검무를 추고 있다. 춤을 추는 여인들의 동작이나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의 표현에서 공연의 흥이 절정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정(情)! 인류애죠. 사랑이에요.”

최근 ‘으리(의리)’의 사나이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배우 김보성이 의리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출연한 식혜 광고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큼 세간에 ‘으리(의리)’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런데 남자들도 꽃미남이 되고 싶어 하는 요즘 시대에, 장풍을 날리며 나타난 의리의 사나이는 얼핏 봐서 빛바랜 사진 같다. 그럼에도 ‘의리’라는 말이 새롭게 유행하는 것은, 의로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세태가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짐작하듯이, 김보성이 보여주고 있는 ‘의리의 사나이’는 무협지에 등장하는 ‘협객(俠客)’에서 비롯되었다. 협객은 자객(刺客)이라고도 하는데, 합법적 혹은 물리적 힘의 한계 때문에 하기 어려운 일을 몰래 해내는 존재들이다. 의리를 간직한 채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불법이기에 노출을 꺼리며그림자처럼 살 수밖에 없다.

그런 협객이 세상에 뚜렷이 드러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전한시대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 덕분이다. 사마천은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해 투옥당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남근을 잘리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당했다. 그럼에도 방대한 역사책인 《사기(史記)》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한 위대한 사나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다양한 인물의 전기를 다룬 ‘열전(列傳)’이다. 그중에서도 ‘유협열전(游俠列傳)’은 그의 본심을 드러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유협(游俠)’은 협객과 같은 말로, 약자를 돕거나 정의를 위해 자객 활동을 하는 의협심 많은 사람을 말한다. 사마천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협객의 도움을 받은 경험으로 역사서에 협객들의 전기를 다룬 ‘유협열전’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여협도’, 이재관, 종이에 수묵담채, 139.4×66.7cm, 국립중앙박물관 칼을 번쩍 들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여검객의 기상 앞에서 세상의 모순과 불의는 단칼에 사라질 듯하다. 얼마나 높이 솟아올랐는지 보름달이 발아래 있다.

‘유협열전’으로 부각된 협객의 이미지는, 송과 원나라를 거치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삼국지》나 《수호전》으로 전개되었다. 중국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검객이나 무사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이 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무협소설 가운데는 무사들과 함께 여검객들이 묘사된 대목도 있다는 사실이다. 유교가 지배하던 전통 사회에서 여성들이 바깥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정황을 감안하면, 소설이라 해도 여검객의 존재는 매우 이례적이다. 더구나 여성 협객을 주제로 한 그림도 여러 점 남아 있어, 그들의 존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조선 후기 김홍도의 <비선검무도(飛仙劍舞圖)>와 신윤복의 <쌍검대무(雙劍對舞)>, 이재관의 <여협도(女俠圖)> 등이 그것이다.

이런 유형의 그림이 빈번히 그려진 것은 소설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김홍도의 <비선검무도>와 이재관의 <여협도>는 당나라 전기 소설 《홍선전(紅線傳)》의 주인공인 홍선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홍선과 같은 여검객의 활약을 다룬 소설은 조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여검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는 《검여(劒女)》가 대표적이다.《검여》는 조선 후기 학자 안석경(安錫儆, 1718~1774)의 저술인 《삽교만록( 橋漫錄)》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양반가의 여인인 경운은 아홉 살 때, 세도가에 재산을 다 뺏기고 가족이 모두 죽음을 당한다. 경운은 몸종인 초옥과 함께 도망쳐, 남장을 하고 검술이 능한 스승을 찾아가 검술을 배운다. 5년 정도 지나자 둘은 칼을 휘둘러 타고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큰 도회지를 돌아다니며 놀이판 춤꾼이 되어 검무를 추며 돈 천금을 모았다. 경운은 그 돈으로 보검(寶劍) 네 자루를 사서 원수의 가족을 모두 죽이고 돌아와, 목욕하고 여복으로 갈아입은 후 자결한다. 어린 소녀의 몸으로 집안의 원수를 갚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비감하다. 그런데 사회적·물리적 힘이 없는 여인들이 왜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세도가의 횡포로 인해, 공권력이 제대로 행해질 수 없었음은 물론 사회에 정의가 바로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회모순이 극에 달해 정당한 방법으로 세상을 바로잡으리라는 기대를 할 수 없을 때, 여협이 나타나 ‘칼’로 악의 무리를 해치우는 스토리는 답답한 백성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역할을 했다.

여검객을 그린 여협도 또한 사회 정의와 의리를 기대하며 읽혔던 소설의 유행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소설 《검여》와 조선시대 <여협도>를 비교해보면, 서로 깊은 연관성이 느껴져 무척 흥미롭다. 예를 들어, 소설 《검여》의 내용 가운데 ‘5년 정도 검술을 익혔을 때 칼을 휘둘러 타고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대목은 김홍도의 <비선검무도>를 연상하게 한다. <비선검무도> 속 여인은 머리를 위로 묶고 붉은색 상의에 바지를 입었다. 얼마나 높이 뛰어올랐는지 수풀마저 저만치 아래에 보인다. 손동작이나 바람에 휘날리는 옷태는 여성적이면서도 공중에서 걷는 것 같은 힘찬 발놀림은 강인한 기운을 뿜어낸다. 마치 가족을 해친 원수를 갚기 위해 숲 속에서 칼을 들고 무예를 연마하는 경운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 그림을 그린 김홍도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화원 화가답게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여성 검객의 복합적 이미지를 탁월하게 표현했다.

또 ‘검술을 배운 후, 큰 도회지를 돌아다니며 놀이판 춤꾼이 되어 검무를 추었다’는 대목에서는 신윤복의 <쌍검대무>가 생각난다. <쌍검대무>를 보면, 앞쪽의 악공(樂工)과 뒷줄의 구경꾼들 사이에서 두 여인이 칼춤을 추고 있다. 특히 빨강색 치마를 입은 여인을 그림의 중앙에 배치하고, 청색 치마의 여인을 그 옆에 두어 시각적 효과를 고조시킨 점이 주목된다. 양손에 칼을 든 채 세차게 돌면서 춤추는 무녀들의 힘찬 동작과 나부끼는 옷자락이, 검무의 격정적인 분위기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을 보노라면, 인물의 동작과 옷자락 등의 세부 묘사는 물론 뛰어난 색채 감각이 참으로 절묘해, 신윤복의 기량이 최고조에 달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는 작은 화면이지만, 얼마나 사실적인지 현실의 공연장에 와 있는 것 같은 현장감마저 느껴진다. 더구나 이 그림은 경운과 초옥이 보검 살 돈을 모을 요량으로 놀이판에서 검무를 추었다는 소설의 내용과도 부합되어, 그림을 보는 감흥이 더욱 크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홀로 남은 초옥이 자신의 몸을 의탁했던 진사 소의천과 이별을 앞두고 검무를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대목은 그 자체로 이재관의 <여협도>를 보는 듯하다. “…그녀는 흰 연화검 한 쌍을 들고 의천에게 절하고 나서, 제비처럼 훨훨 날더니 별안간 칼을 휘둘러 끼고 높이 솟아, 처음에는 사방으로 흩어지되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듯 얼음이 부서지는 듯하다가 중간에는 눈이 휘몰아치는 듯 번개가 치는 듯하더니 끝에는 고니나 학이 훨훨 나는 듯하였다.” 이재관의 <여협도>의 여인 또한 소설 속 초옥처럼 ‘학이 훨훨 나는 듯’ 힘차게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칼을 번쩍 들어 하늘을 가르는 동작에서 흡사 초옥이 휘두르는 칼바람의 위력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때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가을밤이다.

 

‘비선검무도’, 김홍도, 비단에 담채, 34×58.2cm, 개인 소장 여검객이 힘차게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숲 속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녀는 왜 칼을 들었을까? 8

 

예로부터 칼은 인간의 탐욕과 번뇌를 끊어내는 상징물이었다. 옛 선비들은 머리맡에 검(劍)을 걸어두면, 몸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나 선비의 초상화에 칼이 소품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칼이 여성의 손에 쥐어졌다. 칼을 휘두르고 있는 여검객을 그린 <여협도>는 낯설면서 신선하다. 그 이유는 공리공론을 일삼으며 권력다툼만 하는 남성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문신 이식(李植)이 <여협도>를 보면서 “의롭지 못한 사내들을 경계시키기에 충분한 그림”이라고 격찬했다는 이야기는 이 같은 짐작을 뒷받침해준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여협도>에는 여성들마저 분연히 일어나게 한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불의가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의리 혹은 정의를 그리워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의리 외길 20년’을 걸어 온 김보성이 새삼 주목받는 것도 의리와 정의에 대한 사회적 소망이 반영 된 것이리라.

 


글·김정숙 | 진행·이소진 | 디자인·류미라

글을 쓴 김정숙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묵란화 연구’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 그림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감동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어 고려대학교에서 전통 미술 감상법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림을 통해 발견한 통찰을 모아 《옛 그림 속 여백을 걷다》라는 책으로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