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대미술 작가, 무스타파 훌루시의 풍요로운 자연의 풍경과 칼날 같은 추상의 공존
지금 우리가 보고, 읽고, 경험하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의 모든 기준은 누가 만들었으며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20세기 이후로 여러 현대미술 작가들은 ‘본다’라는 행위의 본질을 알고자 많은 실험과 고찰을 해왔다. 영국의 스타 작가로 발돋움한 무스타파 훌루시는 구성회화와 추상회화를 한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우리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던진다.
“결국 세상의 본질은 하나다.”
무스타파 훌루시는 터키계 키프로스(Republic of Cyprus)인이자 영국 태생의 작가다. 미술계는 그를 개념주의 작가로 분류하지만 작가 자신은 표현 방식에 경계를 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작품을 보면 그 작가의 개인적인 사색 방식이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터키계 혈통으로 키프로스에서 출생하고 영국에서 살아온 문화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작품을 위한 영감을 얻곤 하는데, 어느 날 현대 건축물의 틈에서 여러 문화의 흔적이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역사와 현재의 연결 고리에 매혹을 느끼게 되었다. 더 나아가 다양한 인종과 출신 나라로 구성된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정체성을 발전시켜왔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재기발랄한 신인 작가의 데뷔전
그는 영국의 양대 미술 명문인 골드 스미스(Gold Smiths College), 왕립미술대학원(Royal College of Art)에서 각각 순수미술과 비평, 사진예술을 수학했다. 그는 석사 학위 과정 졸업 당시 특이한 작업들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방식이 도발적이고 흥미로웠다.
졸업 전시를 준비할 때, 그는 동부 런던의 버려진 대형 광고판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적어놓은 포스터를 설치했다. 정작 졸업 전시에서는 그의 작품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이미 동부 전역에 설치되어 있던 광고판을 통해 그는 작품이 없이도 작가로서의 유명세를 떨쳤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석사 졸업 후 40세를 한참 넘어서야 겨우 본격적인 미술계 진출을 준비하는데 비해 무스타파는 4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미 작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린 것이다. 그는 미술시장의 작가는 별다른 작품 없이도, 또는 갤러리나 미술관의 도움이 없어도 작가의 유명세를 높일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갤러리와 미술관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시장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미술사에서 미술상들과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알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미술품 거래는 근대에 이르러 더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미술품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안목을 지닌 미술상들과 이들이 시장에 내놓는 작품들을 전시하는 미술관들은 결국 유명 미술가의 명성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됐다. 결과적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유명 갤러리들과 미술관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이들이 작가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사실 1980년대에 이미 yBa(young British artist 80년대 말 전위적인 작품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국 젊은 작가들)는 이러한 시장 논리에 대응할 방책을 여럿 준비했으나 20년이 지난 2000년대 초 당시에도 여전히 시장 논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스타파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이 패러다임의 가치에 대해 질문한 것이다.
무스타파는 ‘문제가 있는 곳에 예술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의무이지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졸업 작품에서 제시한 것은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현실의 맹점을 보여준 것이다.
‘작업이 없는 작가는 작가 타이틀이 부적합하다’는 미술계의 쟁점에 대한 대응으로, 무스타파는 자신의 개념적 완성도와 시각적 표현 능력을 과시하는 전시를 준비했다. <키프로스 독립 전의 올리브 나무와 그 후의 올리브 나무>라는 타이틀의 일련의 사진 작품들로 채워진 전시는 무스타파 훌루시의 공식 데뷔전이다. 이 시리즈는 두 개의 올리브 나무 사진이 하나의 세트로 완성되는 작품인데 두 사진은 같은 시점을 기준으로 찍힌 한 쌍의 사진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정세의 실존적 가치에 대한 고찰이다. 그는 두 개의 올리브 나무 사진이 키프로스 독립 전과 후에 찍혔음을 가정하고 실존하는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키프로스 독립을 기점으로 유럽과 지중해 정치, 금융, 무역의 대대적 변화가 예고되었던 적이 있다. 실제로 키프로스 독립 이후 지중해 패권에 대한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사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무스타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허상성에 대한 고찰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대담함만이 아닌 깊이 고찰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임을 미술계에 알렸다.
가치관에 대한 명료한 고찰
세계 미술시장에서 스타 작가로 등극하는 몇몇 이벤트가 있다. 1955년부터 반 나치를 부르짖으며 시작한 카셀 도큐멘타, 세계 미술시장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그리고 휘트니 비엔날레 등 세계적 이벤트에 국가 대표로 선출되는 기점이 작가의 국제적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무스타파 훌루시는 베니스 비엔날레 52회에 국가 대표로 참가해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시간과 공간, 구상과 추상, 심리와 시각정보 사이를 오갈 수 있음을 보여주며 미술시장의 스타 작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던 중 그는 미술계 속에 은연중 퍼져 있던 문화적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2세대 영국인으로 터키와 영국 사회의 가치관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흥미로운 영상 작품 하나를 완성한다. 영국 사회에서 터키 전통문화는 종종 무슬림 문화로 인식되어 부정적인 문화로 받아들여짐을 인식한 그는 작업의 모티프로 터키 전통 춤인 세마(Sema)를 이용했다.
세마 춤은 메블레비파(Mevlevi Order)의 수도승들이 추던 의식무(儀式舞)로, 승려는 흰옷과 긴 모자를 쓰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춘다. 이를 통해 무아의 세계에 도달한 그들은 신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몇몇 편협한 영국인들이 현재의 극단주의자들과 이 춤을 엮어서 부정적인 견해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무스타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재기발랄한 작품으로 대응했다. 그는 양귀비의 발상지인 터키의 아피온(Afyon) 지역에서 네 편의 양귀비 밭 영상을 찍었다. 네 편의 영상은 암실의 각 다른 벽면을 비추게 되는데 이 영상들은 무작위로 켜지고 꺼지고를 반복한다. 한 번에 하나의 영상이 보여질 수도, 네 가지 영상이 모두 보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안에 들어가 있는 관람자는 다음에 켜지는 영상을 찾기 위해 계속 원을 그리며 돌게 된다. 관람자는 무의식중에 메블레비파의 세마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아무리 의식적으로, 선진화된 방향으로 또는 문명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의식적 제약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점을 주지시킨다. 이 작품을 통해 무스타파 훌루시는 40세의 젊은 나이에 현대미술의 전당인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 소장되는 영광을 얻었으며 이와 함께 조금 더 전통적인 작업 방식을 택하게 된다.
추상과 구상으로 표현된 꽃과 과일
무스타파 훌루시는 그가 바라보는 사회를 조금 더 회화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미술사에서 회화는 추상과 구상미술 사이를 오갔다. 이러한미술사적 관점에서 모티프를 얻은 그는 추상과 구상 사이에 있는 우리의 인식 체계에 대해서 고찰했다. 이를 통해 완성된 시리즈가 추상과 구상을 나란히 배치하는 회화 시리즈이다. 그는 자연의 일부 요소, 그중에서도 꽃과 과일을 실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똑같이 재현한다. 그리고 극적인 패턴 추상을 그린 뒤 이 둘을 나란히 배치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우리가 ‘보는’ 물질과 ‘느끼는’ 물질의 감성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보자면 이 둘의 근본은 같다. 하지만 많은 이는 시각적 사실성을 띠는 구상화에 더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짙다. 작가는 근본과 본질을 보기 전에 외적인 요소로 물질을 판단하는현상을 간파한 것이다.
그가 탐스러운 과일과 아름다운 꽃을 회화의 모티프로 삼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과일과 꽃은 회화 역사에서 언제나 등장했던 소재다. 초기 서구 정물화에서 꽃을 즐겨 그린 이유는 추운 겨울이 되면 실내에 꽃이나 과일을 놓을 수 없어 대신 흡사하게 그린 그림을 벽에 걸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꽃과 과일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각각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한 ‘순환’의 끝을 의미하며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꽃이 지고, 열매가 썩기 시작하면 새로운 순환이 시작된다.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극단적인 끝이 없다. 하나의 순환이 끝나면 새로움이 시작되는 하나의 연결 고리 속에서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룬다.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 법칙과 이념은 이러한 균형에 부합되지 않는다. 작가는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의 허상조차도 자연이 자신의 균형을 찾아내듯 순환고리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작업의 깊이를 더해가는 무스타파 훌루시의 작품 세계에 관심을 보이던 미술계의 큰손, 사치 갤러리(The Saatchi Collection)가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동시의 전시를 열었다. 영국의 시몬앤드시몬(simmons&simmons), 스페인의 라 카익사(La Caixa)재단, 루이비통의 모회사 LVMH의 회장 개인 컬렉션이자 프랑스 최고의 현대미술 컬렉션 중 하나인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 컬렉션, 독일의 고에츠(Goetz), UBS 아트 컬렉션(Art Collection) 등 공신력 있는 컬렉션들과 영국 정부 컬렉션인 브리티시 카운슬 컬렉션(British Council Collection)에서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특별히 검은색으로 제작된 작품을 의뢰했으며, LVMH 기업 컬렉션뿐 아니라 개인 소장품을 개별적으로 의뢰하기도 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바셀리츠, yBa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발굴한 전설적인 평론가 노먼 로젠탈(Norman Rosenthal)은 테이트와 사치 갤러리에 전시된 무스타파 훌루시의 작업을 보고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작가 중 하나”라는 찬사를 남겼다.
무스타파 훌루시는 미술계에서는 젊다고 할 수 있는 40대 초반에 다양한 작업을 하며 스타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올해 말,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그의 전시가 열린다. 타일로 벽면을 채우는 추상 풍경 시리즈, 대형 비디오 아트 시리즈, 스테인드글라스 시리즈, 조각 시리즈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한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본다는 것,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 원리, 자연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우아함, 시각, 청각, 감성의 교차,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유럽, 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무스타파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글·김성협 | 진행·이소진 | 디자인·류미라 | 도움·더페이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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