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낭만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 '연인의 키스와 피카소의 빵'
파리지앵의 소박한 일상들
전세계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을법한 소소한 풍경들이 있다. 골목 구석 구석을 누비며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아이들, 길거리에서 키스를 나누는 연인, 카페에 앉아 주변 정취를 즐기는 여인. 이 모든 것이 삶이고 풍경이다.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enau)의 사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사진의 배경이 프랑스라서 특별히 여겨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두아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시선은 늘 프랑스의 소박한 일상을 향했다. 파리의 교외인 장티이(Gentilly)에서 태어난 두아노는 평생 파리를 동경했지만 따뜻한 시선에 담긴 사진은 도시의 삶을 열망한다기보다 한적한 삶의 분위기를 그대로 자아낸다. 그의 사진에는 시대의 거장은 물론 사랑 에 빠진 연인, 거리를 활보하는 아이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한 가지 공통점은 그가 “이유 없이 문득 행복을 느끼는 날들이 있다. 내가 가 장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순간들의 행복한 기억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사진에 녹아 있는 사랑스러운 시선이다.
로베르 두아노는 1930년대부터 활발하게 활동했다. 가법 이론, 삼중 투 사 프로세스, 컬러 망점 인쇄, 오토크롬, 듀페이 컬러 등 컬러 인화 기법 이 발명되었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흑백 사진을 고집한 것으로 보인다. 추억 속 아스라한 풍경처럼 그의 흑백사진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재촉하는 것이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키스를 나누는 연인을 포착한 로베르 두아노의 <파리 시청 앞 광장에서의 키스> (1950). 지난 시절 책받침과 연습장 표지를 장식하며 인기를 끌었던 이 사 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방송을 들은 젊은 연인이 기뻐하며 키스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이후 연출 논란을 빚기도 했으나 로베르 두아노가 키스하는 장면을 찍을 타이밍을 놓쳐 두사람에게 한번 더 키스 해달라고 요청한 뒤 찍은 것으로 밝혀졌다.
예술 사진의 본질
로베르 두아노의 작품을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선 사진의 본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은 회화에 비해 순수 예술로 다가오기 쉽지 않은 장르다. 오늘날 일상 속에서 사진이나 동영상 등 디지털 매체를 쉽게 접할 수 있는만큼 학문적인 접근은 생소할 수 있다.
회화는 예술가의 손길이 직접 닿는 반면 사진은 기계를 거치는 과정이 필수다. 특히 복제가 가능한 물질적 특성 때문에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사진이 거쳐 온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본질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진은 4차원의 시공간에서 세 단계의 추상화를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다. 이미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공간은 2차원의 평면으로 축소되는 단계를 거쳐 (알타미라의 동굴벽화에서 보여지듯) 그림이 되고, 선형문자(Lineare Schrift)로 변환되는 과정을 지나 문자가 되었다.
그림은 시각적으로 순식간에 파악되는 피상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문자는 순환적인 시간을 직선 형태로 나열함으로써 개념을 설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림과 문자 모두 하나의 세계를 표현하는 매개체이지만 문자의 한계는 ‘세 번째 추상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발한다. 문자의 미니멀리즘적 특성은 그림과 현상을 왜곡시키기도 하고 지나치게 암호화할 수 있어 개념의 표상으로 간주하기엔 타당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개념을 간파하는 기술의 산물인 사진의 탄생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사건이 일어난 장면을 그림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사진처럼 정확하고 객관적인 이미지의 탄생은 독보적인 단계였다는 것이다. 사진은 그림, 글, 악보 같은 창작물과 견주어볼 때 시공간을 기록해 시각 자료로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 중 유일하게 손이 아닌 기계장치에 의해생산된다.
하지만 기계를 거친다 하더라도 사진을 찍는 각 주체의 시각이 획일화되는 것은 아니다. 셔터를 누르는 주체마다 정해진 프레임 안에 담아내는 세상의 범위와 개체가 다르기에 사진도 회화 작품 못지않은 독창성을 지닌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진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사진 속에 담긴 시공간을 간접 체험하는데 큰 의미가 있지만 촬영자의 시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시선을 이미지로 전달하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감상하는 사람에게서 다양한 해석과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사진 앞에서 작가의 시선과 생각을 가늠하며 풍부한 감정과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다.
홍대 앞에서 느끼는 두아노의 사랑스러운 시선
홍대 부근에서 만남의 장소로 통하는 복합문화공간, KT&G 상상마당에는 전시, 연극, 영화, 워크숍, 디자인 매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다. 지난 5월부터 열린 <로베르 두아노, 그가 사랑한 순간들>전은 로베르 두아노의 따스한 시선과 감성이 돋보이는 사진 8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구성은 순수, 사랑, 풍경, 인물의 주제로 나뉜다. ‘순수’ 파트는 프랑스 아이 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을, ‘사랑’ 파트에서는 길거리 곳곳에서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과 파리의 소박한 결혼식 풍경을, ‘풍경’ 파트에서는 센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자유로운 삶의 모습과 프랑스의 시대 상을 반영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특히 ‘인물’ 파트는 그간 작품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대의 거장들의 인물 사진인데 파블로 피카소, 알베르토 자코 메티, 르 코르뷔지에, 페르낭 레제 등 두아노와 생애를 함께했던 예술가들의 모습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출품작들은 전통적 사진 인화방식인 젤라틴 실버프린트 공정을 거쳐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로베르 두아노의 손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INTERVIEW | 아틀리에 로베르 두아노 재단
아틀리에 로베르 두아노 재단(l’Atelier Robert Doisneau)은 로베르 두아노의 딸들이 그가 살아생전 거주했던 작은 아파트에서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의 사진을 어떻게 관리하고 또 발전시켜나가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Q. 아틀리에 로베르 두아노 재단에서는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재단은 하나의 소규모 에이전시처럼 조직되어 있다. 컬렉션을 분류하 고 아카이빙 작업을 하는 파트, 새로운 전시와 편집 저작물을 기획하며 로베르 두아노의 작품을 배포하는 파트가 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다 수의 영상 전문가, 에이전시 관계자, 출판사, 아트 디렉터의 도움을 받 으며 사진을 관리한다.
Q. 프랑스에서의 로베르 두아노는 입지는 어느 정도인가?
프랑스인의 무의식 속에 로베르 두아노는 국가적 재산처럼 자리 잡고 있다. 여러 학교, 고등교육기관, 대학 등에서 그의 작품을 연구하고 있다. 매번 로베르 두아노의 전시가 개최될 때마다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있다. 많은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하고 그의 작품을 함께 만끽하고 있다

Q. 로베르 두아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점은 무엇인가?
그의 삶에서 작업 활동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쉬지 않고 사진을 찍으며 살았다. 우리들은 아버지가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감정에 강렬한 애착을 느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무거운 중압감이라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었다. 우리는 그가 사진 작업이라는 행위를 통해 조금은 다른 세상을 꿈꾸었으리라 생각한다. 20세기, 격정적인 시대를 살았지만 그는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세상을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배경과 가벼운 허구가 어우러지면서 그의 독창 적인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Q. 로베르 두아노는 어떤 기종의 카메라를 사용했는가? 그리고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가?
1952년부터 롤라이플렉스를 주로 사용했다. 이후 24×36mm 필름 작업을 하기 위해 라이카, 펜탁스 또는 니콘도 번갈아서 사용하기도 했다. 카메라 일부는 아직도 재단에서 보관하고 있다. 가끔 전시회 때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도 함께 전시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Q. 한국 최초의 전시에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있는가?
로베르 두아노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이다. 한국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매우 궁금하기도 하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지만 그럼에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는 것, 마치 특별한 선물 같은 느낌이 아닐까.
글·이지민 | 진행·이소진 | 디자인·김재석 | 사진·한상무 | 도움·KT&G 상상마당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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