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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피플

뉴욕의 떠오르는 아티스트,
로버트 라차리니(Robert Lazzarini)의 스튜디오 '왜상된 해골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의 순간'

by 하나은행 2014. 9. 18.
Hana 피플

뉴욕의 떠오르는 아티스트,
로버트 라차리니(Robert Lazzarini)의 스튜디오 '왜상된 해골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의 순간'

by 하나은행 2014. 9. 18.

 

회화에서 왜상기법(Anamorphosis)은 시각적으로 일그러진 상을 말한다. 프랑스어로 ‘Ana’는 ‘거슬 러 오르다’라는 뜻이고, ‘morpho’는 ‘형태’이므로, 결국 왜상이란 본래의 형태를 되찾기 위해 현재의 형태를 파괴하고 재구성한다는 의미가 된다. 흔히 왜곡과 비슷한 의미로 혼용하기 쉽지만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왜상은 기하학이나 수학 형식의 일정한 법칙으로 왜곡되거나 시각적으로 일그러진 상을 말하는 것으로, 왜곡과 다르게 본래의 형태를 변형함에 있어서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며 관찰자로 하여금 착시를 느끼게 하는 점이 다르다.

 

로버트 라차리니(Robert Lazzarini)의 작품은 여러모로 ‘왜상기법’을 떠오르게 한다. 작품의 모습이 왜곡되고 변형된 형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라차리니의 작품은 어떠한 시점에서 보더라도 정상적인 이미지로 복원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왜상기법’이라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정상적인 이미지로부터 왜곡된 이미지가 아닌 그 자체로 독립된 이미지인 것이다. 사물과 인식의 관계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작업으로 뉴욕 예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로버트 라차리니를 만나보자.

 

Q.그의 작품은 한눈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에게 작품 철학에 대해 물었다.

A. ‘당연하게 생각하던 사물을 낯설게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익숙한 공간의 체계나 좌표에서 일 탈되는 불편한 감정이나 혼란스러움을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드는 작품은 우리 몸에익숙한 원근법의 공간체계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마치 공간 자체가 왜곡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거나 이동하며, 작품에 어떤 공간적인 연관성이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지만 이러한 모든 노력은 결국 헛된 것이 되고 말죠. 그건 작품을 만들 때 저의 주요 관심사가 ‘인식의 문제’라서일 거예요. 아주 일상적인 방식에 매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통해 실재와 허구의 모호성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처음에는 낯선 것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이 내 변형된 이미지나 공간에 적응되는 경험을 하면서 작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2.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리처드 반수의 사진작품이 침대맡에 걸려있다. ‘Unabomber Cabin’, Richard Barnes, chromogenicprint, 2001 3. 폐자재물을 소재로 작업하는 2인조 아티스트, 조나 프리먼과 저스틴 고의 상자작품. 뒤로는 마크 플루드의 회화작품이다. ‘Marasa Boxes’, Jonah Freemanand Justin Lowe, cardboard, ink, 2010 ‘Impact Zone’, Mark Flood, acryliconcanvas, 2013 4.세라믹으로 만든 손 모양 도자기.
2.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리처드 반수의 사진작품이 침대맡에 걸려있다. ‘Unabomber Cabin’, Richard Barnes, chromogenicprint, 2001 3. 폐자재물을 소재로 작업하는 2인조 아티스트, 조나 프리먼과 저스틴 고의 상자작품. 뒤로는 마크 플루드의 회화작품이다. ‘Marasa Boxes’, Jonah Freemanand Justin Lowe, cardboard, ink, 2010 ‘Impact Zone’, Mark Flood, acryliconcanvas, 2013 4.세라믹으로 만든 손 모양 도자기.

 

 

Q.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좀 특별하다고 들었다.

A. 이전에도 여러 번 전시했지만 가장 이슈가 된 계기는 2000년 휘트니 미술관의 <비트스트림(Bitstreams)> 에서 선보인 <해골(Skulls)> 작품을 통해서였어요. 저는 환한 조명이 켜진 작은 전시장의 네 개 벽면에 각 다른 지점에서 바라본 해골을 성인 눈높이에 맞춰 하나씩 설치했습니다. 각 벽면에 걸린 네개의 해골은 제각기 다른 각도에서 본 것처럼 일정한 법칙으로 왜곡되어 있었죠.

 

저는 천장과 바닥에서 비춰지는 조명의 그림자를 최소화하도록 만들어서 작품의 고유한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말하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었죠. 관객은 어느 한 벽면에 걸린 해골을 자세히 관찰하려는 순간, 해골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음을깨닫게됩니다.

 

처음에는 조명에 의한 빛과 그림자 효과 때문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초에 해골 자체가 물리적인 왜곡으로 형태가 뒤틀렸음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전시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됐고, 이후 연장 시리즈 작업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어요.

 

(왼쪽)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바라본 맨해튼 풍경 (오른쪽) 창문 옆에 걸린 그림은 ‘Custom Banners’, David Ratcliff, acrylicandspraypaintonpaper, 2010
(왼쪽)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바라본 맨해튼 풍경 (오른쪽) 창문 옆에 걸린 그림은 ‘Custom Banners’, David Ratcliff, acrylicandspraypaintonpaper, 2010

 

 

Q. 그럼 2000년 이전의 작품들은 어땠는지?

A. 199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바이올린(Violin)>이란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17세기의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 바이올린을 왜곡시킨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사물이 ‘실용적인 기능을 가진 것’에서 ‘시각적인 이미지’로 변화하는 점에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습니다.

 

바이올린은 연주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들려줄 수 있는 악기로 인식되지만 왜곡된 바이올린은 그저 보여지는 이미지로 남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들로 <스튜디오 오브젝트(Studio Objects)>라는 전시를 열기도 했어요. <해골>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이때 탄생했지요.

 

Q.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울 것 같은데 어떤지 궁금하다.

A.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주제에 맞게 소재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의 작업은 총(Guns), 칼 (Knives), 격투할 때 쓰는 손가락에 끼는 브라스 너클(Brass Knuckles)을 소재로 했습니다. 폭력이라는 주제 안에서 손으로 잡는 무기에 따른 이해관계를 연상해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총은 스미스앤 드웨슨 사의 38구경의 회전식 연발 권총을, 칼은 주방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식칼을, 또 손에 쥐고 직접 타격을 가하는 브라스 너클을 작품으로 재현했습니다. 원래 역할이었던 쏘고, 찌르고, 가격하는 객체의 본질을 함께 변형시킨 작품이었어요.

 

이러한 작업 기법은 컴퓨터 기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아주 복잡한 과정이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을 지정하고 그 사물을 컴퓨터 3D 스캐너로 스캔해 입체적인 데이터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 램으로 그 형태를 구현한 후 수작업으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총을 만들 때 실제 총을 놓고 레이저로 스캔한 뒤 이미지를 데이터화하고 2차원적인 가상의 평면에서 뒤틀고 왜곡시키는 거죠. 이렇게 왜곡된 2차원적인 이미지는 다시 3차원적인 조각물로 탄생합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디테일을 위해 손 으로 정성껏 마무리합니다. 그래서 제 작품은 3차원적인 조형물인 동시에, 2차원적인 평면에서 변형 되어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인 것이죠.

 

Q. 작품 스케일에 신경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지?

A. 익숙한 것을 낯설게 느껴지게 하려면 작품과 관객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와 근접할 수 있는 스케일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설치된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관계성이 활발히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보는 사 람의 눈의 위치와 몸의 크기를 고려해서 작업해야 하죠. 해골처럼 작은 작품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욱 자극합니다. 선뜻 무슨 형상인지 알아보지 못해 작품 주위를 맴돌게 하고 유심히 살펴보게 하는 힘 이 있지요. 저는 작품과 관객의 거리를 적극적으로 줄이는 데 많은 고민을 합니다.

 

1. ‘Safe(blown)’, Robert Lazzarini, metalandpaint, (body)130×69×74cm, (door)20×71×168cm, 2011 2.‘Knives(detail)’,,Robert Lazzarini, steel, wood, plastic, 91×152×61cm, 2008 3. ‘Payphone’, Robert Lazzarini, aluminum, stainlesssteel, plexiglasandsilk-screenedgraphics, 274×213×142cm, 2002
1. ‘Safe(blown)’, Robert Lazzarini, metalandpaint, (body)130×69×74cm, (door)20×71×168cm, 2011 2.‘Knives(detail)’,,Robert Lazzarini, steel, wood, plastic, 91×152×61cm, 2008 3. ‘Payphone’, Robert Lazzarini, aluminum, stainlesssteel, plexiglasandsilk-screenedgraphics, 274×213×142cm, 2002

 

 

Q. 지금 살고있는 뉴욕이 작품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A. 저는 뉴저지에서 태어났고, 맨해튼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 맨해튼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적응이랄 것도 없이 바로 뉴욕에 흡수되었죠.

 

1970년대까지만 해도 뉴욕은 폭력이 난무하는 황무지 같은 모습이었어요. 저는 폭력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아마도 이러한 경험 속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2002년에는 <공중전화(Payphone)>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당시 전 미드 타운에 있는 헬스키친(Hell’s Kitchen)에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 주택이 들어선, 쓰레기와 폭력이 난무하는 동네였죠.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중전화부스 안에 이웃에 일어난 범죄를 알리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데, 그때 현실적인 모습을 반영한 겁니다. 

 

오늘날 뉴욕은 그때보다는 훨씬 안전하지만 아직도 가끔 그때의 폭력적인 감성이 남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 많아요. 개인적으로 폭력은 미국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폭력에 매료되어 있기도 하고요.

 

Q. 작가로서 작품을 의뢰받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런 작품들을 소개하자면?

A. 컬렉터나 기관의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은 많지 않은 편이에요. 하지만 의뢰를 받게 되면 의뢰자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즐겁게 작업하는 편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뉴욕 예술계에서 존경받는 컬렉터 가문인 피터 노턴(Peter Norton) 패밀리와 2003년에 진행한 <크리스마스 프로젝트 (Christmas Project)>’ 예요. 피터 노턴은 뉴욕 예술 인사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많은 작가가 기쁜 마음으로 함께 참여했죠. 그때 저는 왜곡된 형 태의 빈티지 찻잔을 만들었습니다. 세라믹을 재료로 물망초 패턴의 빈티지 찻잔과 받침대를 만들고, 메탈 소재의 티스푼을 만들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로버트 라차리니의 작업실 풍경
로버트 라차리니의 작업실 풍경

 

Q. 앞으로의 작업 활동에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A. 기존의 정형화된 시각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처럼 자신의 작품 안에서 한계점을 넘나드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아직 스튜디오에서 더 많이 연구하고 탐구해야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좀 더 깊게 파고들면서 저만의 작품 세계를 좀 더 넓게 확장하고 싶습니다.

 

/ 글·강희경 | 진행·이소진 | 디자인·최연희 | 사진·강재석 | 번역편집·최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