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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피플

근대 사회를 움직인 예술가들, 새로운 우상의 탄생과 시대의 장막 :: 드뷔시, 마르셀 프루스트, 마네

by 하나은행 2014. 8. 6.
Hana 피플

근대 사회를 움직인 예술가들, 새로운 우상의 탄생과 시대의 장막 :: 드뷔시, 마르셀 프루스트, 마네

by 하나은행 2014. 8. 6.

19세기는 서양 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18세기 말부터 불어닥친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고, 경제 분야는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산업사회가 본격화됐다. 이 때문에 사회의 구성 원리가 완전히 바뀌자 그동안 신분 등 여러 제한에 억눌려 있던 다양한 분야의 혁신적인 인물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해 대중에게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사회 변혁 의식과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엘리트 집단과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예술가들이 독창적인 작품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

 

드뷔시, 음악은 보인다

 

음악은 감상이 목적이다. 19세기까지 음악의 역할은 의식(교회나 제사 등)과 유흥(공연과 연주 회 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음악의 인상파, 음악의 상징주의자라고 불리는 클로드 드뷔시의 등장으로 비로소 음악도 이전 세계와 다른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드뷔시는 음악의 회화성 을 추구했는데 이것은 외부의 자연 풍경을 자기 내부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재구성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미지> <달빛> <목신의 오후 전 주곡> 등 대표작을 들어보면 그에게 음악은 “자 연과 상상 사이의 미묘한 상호 작용”이다.

 

‘The Great Wave off Kanagawa’, Katsushika Hokusai, woodcut, 1831
‘The Great Wave off Kanagawa’, Katsushika Hokusai, woodcut, 1831

 

 

그는 음표 하나로 마치 세상에 없던 풍경을 찬연하게 펼쳐놓는다. 아름답다. 특히 교향시 <바다>는 잠시 사랑했던 카미유 클로델과 함께 본 호쿠사이의 채색 목판화 <카나가와의 큰 파도>를 음악으로 옮긴 작품이다. 이때 음표는 손에 만져질 듯 살아 있어서 음악당 안으로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치는 듯하다. 

 

즉 음악도 문학과 그림처럼 예술적 표현 언어로 가능해졌다. 올리비에 메시 앙, 아놀드 쇤베르크 등 후대의 작곡가들은 드 뷔시의 정신을 이어받아 들리는 음악에서 언어 로써 말하는 음악으로 지평을 넓혔다.

 

 

마르셀 프루스트, 소설은 내면의 독백

 

‘Portrait de Marcel Proust’, Jacques Émile Blanche, oil on canvas, 73.5×60.5cm, 1892
‘Portrait de Marcel Proust’, Jacques Émile Blanche, oil on canvas, 73.5×60.5cm, 1892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혹은 허황될지라도 그럴듯하게 눙치며 잘 풀어놓을수록 소설가의 인기는 높아진다. 소재가 파격적이고 독특할 수록 대중은 환호하는 법이라 소설가에게 좋은 소재는 필수적이다.

 

외도에 빠진 아주 정숙했던 귀족 부인 같은 소재는 언제나 환영받지만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불륜은 나쁘다’의 언저리를 맴돈다. 그런데 만약 ‘불륜이 나쁠까’ 라고 문제를 던진다면? 프랑스의 소설가인 구 스타브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로 당대의 도덕관념에 도전했다. 그가 소재와 주제로 사실주 의 문학의 대표 작가라는 칭호를 거머쥐었다면, 마르셀 프루스트는 독창적인 문체로 문학계를 뒤흔들었다.

 

그는 7권으로 구성된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20세기 최고의 소설가 반열에 올랐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 유산으로 놀고먹던 그가 제1권인 《스완의 집쪽으로》를 완성했으나 어떤 출판사에서도 그의 원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자비로 책을 출판하자마자, 소재와 문체 등 모든 면에서 열띤 반응을 일으키며 프랑스 문학계를 일대 충격에 빠뜨렸다. 이 책을 읽은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얼마동안 단 한 줄도 쓸 수 없을 정도라며 극찬했다.

 

이 작품의 줄거리 요약대회가 열릴 정도로 소설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무한히 길어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렵다. 당시 귀족과 부르주아 사회를 배경으로 주인공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무의식속에 파묻혀 있는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찾아간다. 소설은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과정이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이 사회 현실의 재현 도구로 인식되던 19세기 후반에 프루스트는 현실 속으로의 탐구라는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냈다. 모두가 반대하는 길로 걸어가는 실험적인 예술가의 도착점에 시대는 매혹당한다.

 

 

마네, 풀밭 위에 등장한 회화의 신세대

 

19세기 중반의 서양 미술계는 고전주의, 사실주의, 낭만주의 등이 혼재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당대를 헤쳐갔다. 이 무렵에 등장한 에두아르 마네는 관념 속 풍경과 역사적인 사실을 표현하는 수단이던 고전주의 회화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

 

그는 눈앞의 현실을 캔버스의 질서에 맞추어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렸다. 왜냐하면 그에게 캔버스는 현실과 다른 독립된 세계이며, 회화는 자연을 모방한 현실에 대한 환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화가는 자연을 바라보듯 그림을 바라봐서는 안되었다. 즉 입체의 자연을 벗어나 평면의 캔버스를 우선시해야 했다.

 

서양 미술사에서 회화의 근대화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나, 자연에서 캔버스로 중심을 옮겨온 마네의 중요성은 간과 할 수없다. 놀랄만큼 사실적인 여자의 벗은 몸을 그린 <풀 밭 위의 점심 식사>는 공개되자마자 논쟁에 휩싸였다. 가장 큰 이유는 여인의 몸이, 비율과 비례가 매끈하던 이전 시대의 이상화된 육체와는 달리 옆집 여자처럼, 평범하고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화단에서는 그 점이 불쾌했고, 외설로 판단했다.

 

‘The Luncheon on the Grass’, Edouard Manet, oil on canvas, 208×265.5cm, 1863
‘The Luncheon on the Grass’, Edouard Manet, oil on canvas, 208×265.5cm, 1863

 

마네는 이상을 떠나 현실 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심지어 <풀밭 위 의 점심 식사>를 점심시간인 12시부터 2시 사이에만 이젤을 펴고 작업했다. 그는 그림 밖의 빛을 느끼고 관찰해 그림 속의 색으로 기록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림 밖의 점심 빛을 마네는 그림 안의 점심 색으로 그려냈다.

 

<올랭피아>는 더 멀리 나아간다. 서양 미술사에서 이상적인 여성미를 드러내는 대상인 비너스를 그리면서 마네는 신화적인 관능성이나 여성미의 신비로운 면을 걷어냈다. 옷을 전부 벗은 채 신발만 신고 다리를 꼬고 목에는 리본을 묶고 있는 그녀는, 딱 창녀의 모습이다. 흑인하녀가 든 꽃다발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녀의 연인(정부 혹은 손님)을 암시한다.

 

마네는 자신의 그림에서 ‘금기를 깨도 괜찮다, 사실 거기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이런 마네의 혁신성은 사회에 폭넓 은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인상파의 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래서 그를 회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젖힌 구세대의 막내이자, 신세대의 시작점으로 간주한다. 실력이 뒷받침된 강한 개성은 역사에 굵은 발자국을 남긴다.

 

시대의 격변기를 살았던 세 예술가들은 모두 독창적인 시선으로 자기 분야를 바라봤고, 개성이 강한 결과물을 발표하며 당대에 묵직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들이 전한 메시지는 확실하다. 항상 새롭고, 개성을 가져라. 그것이 작품으로 잘 구현될 때, 동시대인들은 지지와 존경으로 보답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들의 활약으로 더 이상 예술가들은 왕족과 귀족의 기술자가 아 니라 당대인들의 사고와 세계관에 막대한 영향 을 주는 중요 인물들로 자리매김했다.

 

글·이동섭 | 진행·이소진 | 디자인·최연희 | 사진·김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