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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피플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중심에서 :: 조이스 시겔(Joyce Siegel)의 뉴욕 스튜디오

by 하나은행 2014. 6. 18.
Hana 피플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중심에서 :: 조이스 시겔(Joyce Siegel)의 뉴욕 스튜디오

by 하나은행 2014. 6. 18.

 

 

미니멀 아티스트인 조이스 시겔의 작품은 단순하고 절제되어 있다. 또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녀는 특정한 단어, 뉴스, 시 등 여러 분야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든다. 즉흥적인 생각이 터져 나왔다가 절제되기를 반복하고 다듬어져야만 비로소 순수한 형태의 언어로 새롭게 탄생한다. 감정의 분출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오히려 작가의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냉정 속에 감춰진 열정의 온기 때문이다.

 

조이스와 나는 신진 작가들을 지지하고 예술 교육을 지원하는 비영리재단 활동을 통해 만나게 된 사이다. 그러다 몇해 전, 그녀와 나는 재단에서 진행하는 아트투어에 참가하면서 멕시코와 쿠바에 다녀왔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며 급격히 가까워졌다. 

 

조이스는 처음 만났을 때 다소 날카로운 인상을 풍겼고, 파크 애버뉴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 나는 그녀가 전형적인 뉴욕 상류사회 여성처럼 까다롭지 않을까 생각했다(파크 애버뉴는 맨해튼에서 최고급 주택이 들어선 곳으로, 뉴욕 상류층이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며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조이스는 미지의 장소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누렸고, 새로운 것들을 모두 흡수하려는 듯 종횡무진 여행지를 누볐다.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 어내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최근에 나는 그녀에게 블랙과 화이트로 구성된 작품들에 자꾸 눈이 간다고 말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집이야말로 그런 작품들이 가득한 곳이니 한번 놀러 오라며 초대했다. 그렇게 방문한 그녀의 집은 사려 깊은 품성과 소박한 것에 대한 애정을 지닌 그녀와 쏙 빼닮은 공간이었다. 열정적인 예술가, 환상적인 컬렉터, 세 명의 아이를 둔 엄마인 그녀에게 작품, 컬렉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뉴욕의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모로코의 앤티크 그릇과 그녀의 세라믹 도자기가놓여있다.
뉴욕의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모로코의 앤티크 그릇과 그녀의 세라믹 도자기가놓여있다.

 

 

Q. 그녀가 작가가 된 계기는 좀 특별했다. 예술계에 입문한 동기를 물었다.

 

저는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10년간 일했어요. 마지막 2년은 런 던에서 근무하게 됐는데, 이때가 내 인생의 확실한 터닝포인트였죠. 저는 런던에서 지내면서 예술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됐어요. 그중에는 아티스트와 컬렉터도 여럿 있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런던과 독일에 있는 갤러리와 미술관을 샅샅이 돌며 다양한 작품을 접했답니다. 저는 페인팅, 조각, 드로잉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현대미술에 사로잡혀 생에 첫 번째 컬렉션을 구입하기도 했어요. 

 

예술과 나 자신에 대해 열정적으로 탐험했던 소중한 시간이었죠. 뉴욕으로 돌아올 무렵 마음속에 일렁이는 열정을 실행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고, 미술 학교에 입학해 드로잉 수업부 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다행스럽게도 뉴욕에는 좋은 예술 학교가 많았고, 제 결심은 확고했기 에 아티스트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20년 전 일이네요.

 

2.옐로톤의벽에 걸려 있는 조이스 시겔의 작품. ‘It’s All About ME’, acrylic paint on wood panel, 30.48×76.2cm, 2013 3.세점의그림은그녀의페인팅작품으로 미니멀한 구성이 조화를 이룬다. 모두 종이에 연필 드로잉한 작품으로 2007년 제작했다. 선반에 놓인 검은 항아리도 조이스 시겔의 세라믹 작품.
2.옐로톤의벽에 걸려 있는 조이스 시겔의 작품. ‘It’s All About ME’, acrylic paint on wood panel, 30.48×76.2cm, 2013 3.세점의 그림은 그녀의 페인팅 작품으로 미니멀한 구성이 조화를 이룬다. 모두 종이에 연필 드로잉한 작품으로 2007년 제작했다. 선반에 놓인 검은 항아리도 조이스 시겔의 세라믹 작품.

 

 

Q. 작가로서 추구하는 작품 스타일이 있다면?

 

제 작품을 굳이 카테고리로 분류하자면 미니멀 아트에 속할 거예요. 작품의 형태가 페인팅인지, 세라 믹인지, 드로잉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각 작품 속 요소들은 반복성과 연속성을 띠고 있어요. 질서는 이미지나 꾸밈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를 만들어내는 본질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상 본연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단일한 색채, 단순한 형태, 오브제를 강조하지요. 최소한의 요소로 구성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 과정이 없이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을 실을 수 없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편입니다.

 

그녀의 우아한 취향과 감각이 엿보이는 서재. 소파 뒤에 걸린 작품은 시그마 폴케의 프린트 작품 2점과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사진 작품이다
그녀의 우아한 취향과 감각이 엿보이는 서재. 소파 뒤에 걸린 작품은 시그마 폴케의 프린트 작품 2점과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사진 작품이다

 

 

Q. 작품을 보면 시리즈 1, 시리즈 2 등 연작인데 이렇게 작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생각이 꼬리를 물어 그다음 생각을 이끌어내듯 현재의 작업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는 그다음 작품의 아이디와 연결됩니다. 작품이 하나 완성될 때 이미 머릿속에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이 시작되 는 것이죠. 그렇게 모인 작품이 시리즈가 되고 그다음 시리즈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제 작품은 드라 마틱한 변화가 아닌, 유기적인 연결 속에서 존재합니다.

 

 

Q. 아티스트로서의 삶은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했다.

 

작가의 삶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작품이 곧 나를 대변하고, 내가 작품에 자연스럽게 투영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금융권에서 일할 때는 불투명한 앞날의 결과를 예측해야 했기에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모를 위기에 봉착하지 않으려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또 분석했죠. 하지만 작가의 삶은 다릅니다. 마음껏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일들 이 내 인생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삶이니까요. 어떤 일이든지 막으려 애쓰지 않는 인생이기에 더즐겁게살아갈수있는 것 같아요.

 

 마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복도. 오른편에 보이는 작품은 미국 사실주의 화가, 알렉스 카츠의 카툰 드로잉 작품이다. 그 왼편으로 보이는 작품은 조이스 시겔의 회화 그림. ‘Obscured Blackboard’, acrylic paint and chalk on wood panel, 93.98×18.1cm, 2009
마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복도. 오른편에 보이는 작품은 미국 사실주의 화가, 알렉스 카츠의 카툰 드로잉 작품이다. 그 왼편으로 보이는 작품은 조이스 시겔의 회화 그림. ‘Obscured Blackboard’, acrylic paint and chalk on wood panel, 93.98×18.1cm, 2009

 

 

Q. 그녀가 뉴욕 퀸스의 롱아일랜드 시티에 스튜디오를 꾸린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첼시에 스튜디오를 차렸어요. 하지만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바람에 아직 기반을 잡지 못한 신진 아티스트들은 첼시에 스튜디오를 열 수 없었죠. 한편 맨해튼에서 멀리 떨 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신진 작가들의 스튜디오가 막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중 한 곳이 퀸스에 위치 한 롱아일랜드 시티였죠. 이곳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예술가들이 많아요. 예술에 대해 견해가 다 양한 그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제가 좋아하는 일상의 행복 가운데 하나죠. 그런데 슬프 게도 앞으로 롱아일랜드 시티에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설 예정이라, 작업실 공간을 빼앗기는 아티스 트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저 역시 스튜디오를 옮기지 않고 오래 작업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Q. 조이스는 작가이지만 동시에 컬렉터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작품을 구입할 때 비중 있게 보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친구들이 제 작업과 컬렉션이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부러 제 작업과 비 슷한 작품을 컬렉팅하는지 물어보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그런 부분을 의식하고 구입하지는 않았습 니다. 컬렉터들 대부분이 그렇듯 평소 갤러리와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보는 데 시간을 많이 쏟는 편이에요. 반면 작품을 살 때의 결심은 짧은 순간이지요. 

 

작품을 구입하는 기준은 매우 단순하 고 명확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까지 구입한 작품들은 대 부분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단 컬렉션뿐만 아니라 옷, 집, 인테리어 소품, 작품 등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모은 예술작품과 내 작품이 비슷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겠지요.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제 컬렉션의 철학은 ‘사랑하는 것들로 주변을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웃음)

 

2. 왼편의 작은 회화 작품들은 조이스 시겔의 격자무늬(Checkerboard) 시리즈이다. 오른편 벽에 걸린 것은 존 비치의 작품들. 그 아래에는 조각가, 키키 스미스의 브론즈 작품과 조이스 시겔이 2013년 완성한 목재 조각이놓여있다. 3.투명한합성수지인 플렉시 글라스로 만든 실반 리오니의 작품들. 4.벽한쪽에놓인작품들. 에릭 덴 브리젠, 앨리스터 프로스트 그리고 조이스 시겔의 작품들이다

 

 

Q. 그녀에겐 예쁜 세 자녀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은 어떤지 궁금했다.

 

저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우는데,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예술과 숨 쉬며 자랐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죠. 집은 물론이고 미술관, 갤러리에서 예술을 접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이러한 경험이 아이들 의 삶과 가치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아이들이 취향 에 대해 알아가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충실히 살았으면 하고 바랍니 다. 언젠가 아이들이 예술을 향한 제 열정에 공감하고 함께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다면 기쁘겠지요.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물었다.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즐겁게 하는 것, 나의 아이들과 나의 컬렉션이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입 니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기에 앞으로도 흥미로운 것들을 마음껏 느끼며 살고 싶고요. 새로운 장소로 여행도 많이 떠나고 싶어요. 나 자신을 더 좋은 것들로 채우고 그러한 경험들이 모여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어요. 또 올해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어요. 학생들과 함께 예술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새로운 의견을 주고 받으며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작품을 하는 것만큼이나 창의적인 활동이니까요.

 

글·강희경 | 진행·이소진 | 디자인·최연희 | 사진·강재석 | 번역편집·최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