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 준의 건축세계 : '바람의 노래가 들리는 곳'
<미술관 옆 동물원>. 성격이 대조적인 두 남녀가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따뜻한 영화로 기억한다. 본능적이며 역동적 이미지의 동물원과 이성적이며 정적인 느낌의 미술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존재를 남녀에 비유한 신선한 발상이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과천 국립현대 미술관을 찾을 때면 이 영화가 떠올랐고, 미술관과 동물원은 참 유쾌하고 유려한 조화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물론이겠거니와 건축도 다른 존재와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도, 이 동물원 옆 미술관에서 열리는 건축가 이타미 준의 전시를 보러가는 길목에서였다.
이타미 준. 자신의 이름보다는 제주도 ‘포도호텔’, ‘방주교회’, ‘수·풍·석 미술관’의 건축가로 더 잘 알려진 그의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이타미 준의 40여 년 건축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전이다.
<바람의 조형 展>. 바람의 조형을 추구했던 이타미 준의 전시가 열리는 제 5전시실은 마치 그가 만든 건축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둠과 빛의 변주, 소재의 감성이 그대로 담겨 있는 전시실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으니 귓가에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가 만든 제주의 ‘풍미술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40년 쌓아올린 건축 세계의 근원, 청년 이타미 준
이타미 준의 전시는 마치 그의 일대기를 쫓는 항해와 같았다. 작업의식의 뿌리를 살펴보는 ‘근원’을 시작으로, 40년 동안 변화를 겪은 작품 세계에 이르기까지, 전시는 여섯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각 섹션은 이 낯선 항해를 도와주는 이정표였고, 나는 그 이정표를 따라 천천히 이타미 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항해 초입에서 만난 건 청년 이타미 준이었다. 40년 동안 쌓아올린 이타미 준의 건축 세계의 근원과도 같은 시절. 화가를 꿈꾸던 청년 이타미 준은 먹고살기 빠듯한 예술가보다는 건축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무사시노 공과대학 건축과에 진학했다.
언제나 그렇듯 한번 불붙은 불씨는 쉽사리 꺼질 줄 모르는 법이다. 예술에 대한 이타미 준의 열망도 그랬다. 1970년 그가 첫 건축 작품을 선보이기까지 그는 학교에서의 교육보다 여행과 다양한 예술가와의 만남으로 풍부한 감수성과 작가로서의 감각을 키워나갔다. 그가 스승이라 부른 곽인식, 이우환, 김창렬, 세키네 노 부오, 하야시 요시후미 등과의 왕래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영향은 이타미 준의 건축 뿐 아니라 회화, 서예 등 여러 예술작품으로 표출되었다. 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재의 근원에 도달하 려는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출현한 미술사조인) 모노하 정신이 이타미 준의 조형의식과 깊은 관계를 맺게된 것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한국 이름 유동룡, 이타미 준은 한국 태생 재일 교포다. 한순간도 한국 국적을 포기한 적 없던 그에게 한국은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찾기 위한 탐구의 대상이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면서 마음의 풍요를 추구했던 한국의 전통공간들은 이타미 준 건축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재일동포라는 태생적 정체성이었을 것이다. 청년 이타미 준이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에 대해 미야케 리이치는 “조선시대의 문화, 일본에서의 일상성이 뒤섞여 그 양극단으로 분해되는 긴장감을 내포한 정신의 알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일본과 한국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 며 예술, 문화, 공간에 대해 고민한 이타미 준이 1970~80년대 사이 한국을 직접 답사하며 지은 책들과 수집한 고미술품은 끈질기게 한국을 탐미한 이타미 준의 자취를 보여준다.
인간의 체온, 건축의 야성미, 관계의 조화
순수. 이타미 준이 추구한 제일의 가치라고 나는 생각했다. 차갑고 매끈한 건축물이 범람하는 현대에 소재가 주는 날것의 느낌, 무겁고 원시적인 감각을 쫓았던 이타미 준의 건축이 작은 모형이 되어 전시실 이곳 저곳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늘 사진으로만 보던 그의 작품을 한눈에 담는 순간, ‘순수’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부유했기 때문이다.
이타미 준은 생전 백자, 불상, 파르테논 신전 등에 매료됐었다고 했다. 인간을 사색하게 하는 조형의 순수함을 그것들로부터 찾았기 때문이다. 이타미 준이 초기에 자연적 소재에 집착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이타미 준은 “의식 적으로 흙, 돌, 금속, 유리, 나무 등의 소재를 콘크리트와 대비”시켜 서로 조화와 대립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꾀했다.
1971년 완성된 이타미 준의 데뷔작 ‘어머니의 집’은 풍부한 재료로 생생한 사물의 감촉을 구현해 낸 대표적 작품이다. ‘어머니의 집’의 핵심은 주변 환경에 반응하는 외관의 유리곡면. 이 유리면은 때로는 하늘과 같은 푸른색으로, 때로는 태양과 같은 금색으로 변하며 빛나는 오브제가 된다. “건축가의 데뷔작은 작가로서의 이정표”라고 이타미 준은 말했다.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 소재의 아름다움, 그것이 빛나는 ‘어머니의 집’은 이타미 준 건축 세계의 이정표가 되었다.
한편 1988년부터 10년간은 이타미 준이 보다 원시성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전시장에 놓인 그의 드로잉은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기까지 그의 내면세계를 느끼게 했다. 그가 추구했던 묵직하고 원시적인 건축, 그것을 위해 꼼꼼하게 완성한 드로잉. 예술가들은 치밀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예술가들은 그러했다. 오직 연필로만 집착적으로 작업한 그의 드로잉을 보고 있자니, 이타미 준의 예술가적 면모까지 느껴졌다.
1980년대 이후 일본 건축계는 유리와 철을 사용한 가벼운 건축이 유행했다. 이에 이타미 준은 “현대 건축에 본질적인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체온과 건축의 야성미일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돌과 대나무 등 자연 소재를 사용해 철저하게 ‘무거운 건축’을 추구했다.
“토착 재료를 사용해서 그 땅이 지닌 오래된 가치를 오늘날 부활시켜야 한다.”
이타미 준은 ‘건축의 원시적인 형태’에 의미를 두고자 했다. ‘각인의 탑’, ‘석채의 교회’, ‘M빌딩’은 그런 의미에서 이타미 준이 추구한 원시적인 물성의 힘을 드러내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타미 준은 형태와 소재보다 건축이 매개하는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해야하며, 공간과 사람, 자신과 남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여야한다.”
전시를 보며 나는 그의 작품들이 신과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방주교회를 보고 그 생각이 굳어졌는데, 태초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듯 자연과 어우러진 그 모습에 마치 숨쉬는 생명력까지 느꼈던 것 같다. 사람과 건축, 자연과 건축의 관계에 집중한 이타미 준의 노력이 투영되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재료의 날선 감각이 돋보이던 건축에서 벗어나 온화함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선보인 이타미 준. 특히 제주를 중심으로한 작업은 이타미 준 건축의 원숙미를 보여주면서 건축이 매개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잘 드러냈다.
제주도에 울리는 바람의 노래
이타미 준이 한국인에게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제주도 프로젝트, 바람의 조형 덕분이었다. 전시 막바지에 이르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 건축들이 한 섹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정다운 감독의 다큐멘터리도 상영하고 있었는데, 다큐멘터리 <또 다른 물, 바람, 돌>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새, 물소리가 그의 건축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느낌까지 자아냈다.
제주도는 이타미 준에게 시즈오카에 이은 제2의 고향이었다. 시즈오카가 실재하는 유년의 고향이라면, 제주는 재일동포인 그가 안기고 싶었던 마음의 고향이었다. 두 곳 모두 바다를 면하고 있고, 바다는 곧 바람이 불어오는 장소로서 그에게는 상징적이었다.
바람은 살아 있는 자연의 숨이다. 자연의 숨결이 이타미 준 건축에 닿으면서 그의 작업은 절정에 달했다. 제주에서 그는 40여 년간의 건축 여정에서 정점을 찍는 대표작을 선보인다. 그가 총괄 설계를 맡았던 ‘비오토피아’ 단지 안에 핀크스 클럽하우스 를 시작으로 ‘포도호텔’, ‘수·풍·석미술관’, ‘두손미술관’, ‘방주교회’ 등이 잇달아 완공되었다.
특히 ‘수·풍·석미술관’은 자연에 시시각각 반응하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무쌍한 제주의 자연환경에 건축 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준 이타미 준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건축이란 고정된 것이 아닌 끊임없이 현상하는 자연의 매개체임을. 이타미 준 전시에는 히든트랙과도 같은 곳이 있다.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아틀리에. 도쿄 세다가야구 하네기에 있는 이타미 준 건축사무소의 아틀리에를 재현한 공간으로 이타미 준의 살아 생전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타미 준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들을 늘 곁에 두었다고 했다. 현대회화, 공예품, 문방사우, 책까지 그가 직접 수집한 것들을 곁에 두고 그것의 생생한 촉감을 작업의 원천으로 삼았다. 전시에 출품된 드로잉, 스 케치 등은 바로 이 작은 아틀리에에서 만들어진 그의 ‘손의 흔적’들이리라. 그의 흔적들 중 눈에 띄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한국에 대한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한국 여권과 그가 수집한 한국 민화와 도자기, 불상 등이었다. 게다가 이타미 준이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남긴 스케치와 일·한사전 등을 보고 있으니 뜨거운 기운이 목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도 오랫동안 이타미 준의 딸 유이화 대표(ITM유 이화건축사사무소)의 인터뷰 영상이 가슴에 남았다. 아버지 이타미 준에 대해 한국 사람들은 왜색이 느껴진다 했고, 일본 사람들은 그저 한국인 건축가라 여겼다고 했다. 젊은 시절 이타미 준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신의 현실에 크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를 국제인이라 부르며, 자신이 이룩한 건축세계에서 살게 되었다는 그녀의 말. 아마도 그것이 그의 독특한 건축세계를 만들지 않았을까.
“건축은 나와 새로운 세계를 매개하는 그 무엇”이라고 말하는 이타미 준.
그의 작품은 우리가 딛고 사는 땅, 장소, 공간의 의미를 생생하게 마주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그 누구보다 건축의 본질에 닿기를 추구했던 한 건축가의 작업이 우리의 환경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의 말처럼 “건축은 인간에 대한 찬가이자 자연 속에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바치는 또 다른 자연”이니까.
글·박혜림 | 디자인·계희경 | 사진·한상무 | 도움·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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