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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컬쳐

피보다 진한 정

by 하나은행 2015. 4. 7.
Hana 컬쳐

피보다 진한 정

by 하나은행 2015. 4. 7.

 

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남동생이 불쑥 결혼하겠다며 한 여인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여인은 남동생보다 스무 살이 많은 연상녀였지요. 심지어 그녀에겐 피가 섞이지 않은 딸도 있었습니다.
막무가내인 남동생 때문에 누나는 할 수 없이 동생과 동생 애인, 동생 애인의 딸과 동거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이 또다시 가출합니다. 집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여자만 남게 되지요.

시간이 흐르고 세 사람은 세상 둘도 없는, 서로를 의지하는 가족이 됩니다. 소위 ‘막장’이라 불릴 만한 이 이야기는 영화 <가족의 탄생> 중 일부입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이 시대 가족의 붕괴를 걱정했지만, 대개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이야기하며 가족의 의미를 재해석했습니다.

미국 인류학자 머독은 가족을 ‘부부와 그들 자녀로 구성되고, 주거와 경제적인 협력을 같이하며 자녀의 출산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과연 이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정의일까요? 이혼과 싱글족이 늘고 한 부모 가족과 재혼 가족, 입양 가족이 증가하는 요즘 ‘진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쉽게 해체되고 붕괴되는 이 사회에 가족의 역할을 대신할 공동체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가족의 의미를 확대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인지 최근 가족을 결혼이나 혈연에 한정 짓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드라마와 영화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지요.

함께 오래 살면서 정을 나누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영화 <가족의 탄생>이 그렇고, 예능 프로그램 <룸메이트>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요. 또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들어 단수형 ‘Family’보다는 복수형 ‘Families’를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시 영화 <가족의 탄생>으로 돌아가봅니다.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사랑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어요.”

굳이 피로 맺어지지 않더라도 서로 공감하고 정서적 유대감과 안정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가족이 아닐까요. 가족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그러나 새롭게 자리 잡은 ‘New Families’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유대와 신뢰, 그리고 사랑이니까요.


글·박혜림 | 디자인·최연희 | 사진·이경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