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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컬쳐

인상파 거장이 남긴 마지막 이야기, 영화 <르누아르>

by 하나은행 2014. 8. 18.
Hana 컬쳐

인상파 거장이 남긴 마지막 이야기, 영화 <르누아르>

by 하나은행 2014. 8. 18.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의 대가들 가운데 한 명이자 역사상 가장 관능적이고 낙천적인 그림을 창조한 화가입니다. 드가는 물과 밤에 천착했고, 세잔은 자연에 대한 엄격한 철학을 일련의 풍경화로 완성해냈다면 빛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인상파 화가 중에서도 르누아르는 가장 화려하고 격렬하 게 미(美)에 도취된 인물이었습니다.

르누아르가 자신의 미 의식을 표현하는 매개체는 여성의 몸이었습니다. “만약 신이 여성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나는 화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죠. 풍성하게 출렁이는 여체, 통통하고 홍조를 띤 소녀들, 금빛 사슬처럼 화폭을 덮는 빛의 유희까지, 르누아르가 사랑하고 묘사했던 모든 것들은 관능이라는 소실점을 향합니다.

그가 그려내는 세계에 결핍과 가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르누아르는 ‘그림은 예쁘고 유쾌한 것을 다 뤄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철학을 명료하게 정리했습니다. 화풍과 어록만을 살펴보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평생 고생이라곤 모른 채 부유하게 살았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언제나 작품들처럼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르누아르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생계를 위해 도자기 공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화가로서의 숙명은 궁핍한 유년 시절부터 그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도공의 일과에서 특유의 색채 감각을 익혔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을 관람하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어렵게 미술 학교에 들어간 후, 르누아르는 모네와 시슬레 등 후일의 인상주의 동료들과 절친하게 지내며 다양한 화풍을 시험했습니다. 1871년부터 1883년 사이 그의 그림은 전형적인 인상주의를 보여줍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세 번째 그룹전에 출품 했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와 <샤토에서 뱃놀이하는 사람들>은 르누아르뿐 아니라 인상파 전체 작품들 가운데서도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이 무렵 그의 그림은 쾌활했지만 프랑스의 사회상은 암울했습니다. 보불전쟁 끝에 나폴레옹 3세는 항복을 선언했고, 독일군이 포위한 파리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굶어 죽었습니다. 현실과 예술의 괴리에 관해 르누아르는 한마디로 일축합니다.

“세상에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 이토록 많은데 거기에다 불쾌한 그림 또 하나를 더 만들어낼 필요가 있겠는가? 내 그림에 검은색은 없다. 인생 자체가 우울한데 그림이라도 밝아야 한다. 비극은 누군가가 그릴 것이 다.”

르누아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화상과 후원자가 하나 둘 늘어났고, 그는 화가로서의 원숙기와 함께 레종 도뇌르 훈장을 비롯한 세속적 명예도 맛보게 되었습니다. 앵그르식의 신고전주의에 경도되며 인상주의적 화풍에서 잠시 멀어지기도 했지만, 1890년 만년에 이른 그는 자신의 가장 본질적인 정수로 회귀합니다.

풍만한 여인의 누드, 배경과 인체의 구별이 사라진 채 서로를 향해 용해되는 색채들, 가늘고 부드러운 붓 놀림과 풍요롭고 미묘한 색감. 르누아르의 마지막 작품들은 순수한 환희 그 자체입니다. 그는 순진한 아이처럼 세상에 경탄한 후 노장의 기술로 그 풍경을 화폭에 옮겼습니다. 그림은 화려하지만, 그것을 완성하는 과정은 지난했습니다.

말년의 르누아르는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시달렸습니다. 언제나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고, 손을 움직이기 힘들어 손가락에 붓을 묶은 채 그림을 그렸습니다. 노쇠한 육체와 어린아이의 감각이 충돌하던 마지막 나날, 질 부르도가 감독한 <르누아 르>는 그가 프랑스 남부 브리타니에서 체류하던 그 한시절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춥니다.

 


# 르누아르의 마지막 뮤즈, 데데

 

 

<르누아르>는 영화의 중심에 한 소녀를 내세웁니다. 앙드레 헤슬링, ‘데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녀는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마지막 뮤즈였습니다.

영화 중반, 매부리코의 노인 르누아르는 탄식인 듯 감탄인 듯 중얼거립니다. “그녀는 무척 아름답다. 나는 쇠약한 눈으로 그녀의 피부가 닳아 없어질 만큼 쳐다본다. 마치 화가가 아닌 어린아이처럼.” “내 모델은 살아 움직여야 해. 살결은 보드랍고 빛나야 해. 빛을 머금은 피부 가 눈부실 정도여야 해.”

데데는 통통하고 사랑스러운 빨간 머리의 미녀입니다. 그녀에게 깃든 순진하고 낙천적인 아름 다움은 르누아르의 미의식과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화가의 시선으로 그녀에게 매혹되었다면, 그의 둘째아들 장 르누아르는 열정적인 연모의 감정으로 데데에게 빠져듭니다. 군대에서 다리를 다쳐 집에 돌아온 장은 데데와 달콤한 나날을 보냅니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데데는 장과 함께 그 꿈을 이루려 하지만, 장은 다시 군대로 복귀하려 하고, 청춘의 애틋한 사건들이 화면 위를 잠시 오갑니다.

이후 장 르누아르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거장이 되었고, 데데는 그와 결혼해 여배우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의 중심이라기보다 곁가지로 여겨집니다. 스크린의 주인공은 오히려 카메라가 담아내는 브리타니의 눈부신 풍광입니다.

 


# 영상으로 담은 르누아르의 풍경

 

르누아르의 섬세한 영혼이 감독에게 빙의라도 한 걸까요? 영화의 한장면, 한장면이 그의 그림을 영상으로 번안한 듯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감독은 마치 화가라도 된 듯 빛의 농도를 절묘하게 조절하며 풍경을 담아냈습니다. 핑크빛 나신과 빛이 부드럽게 비쳐드는 실내, 저녁무렵의 황금빛 벌판과 수백 가지 녹색으로 산란하는 숲은 지상의 에덴처럼 보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귀에 감도는 개울소리와 바람소리 역시 황홀합니다. 그 낙원 한가운데서 르누아르는 마지막까지 예술을 위해 분투합니다. 느릿하고 담담하게 펼쳐지는 만년의 일화들 가운데 유독 강한 인상으로 남는 장면이 몇 있습니다.

어느 날 르누아르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테라스까지 힘겹게 걸어갑니다. 테라스에 다다르는 것에 성공하지만, 그는 불만과 피로에 가득한 얼굴로 한마디 내뱉습니다. “이런, 그림을 그릴 힘마저 사라져버렸잖아.” 또 다른 장면에서 노 인은 조용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고통은 지나가도 아름다움은 영원하다.” 

임종 직전, 르누아르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고 집하며 “이제야 무엇인가 알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고 합니 다. 황홀한 자연 풍광과 함께, 르누아르의 천진한 열정은 이 영화에 빠져들 수 있는 동력입니다. 고집 세고 무뚝뚝한 표정의 이면에서 화가의 예술혼을 섬세하게 표현한 대배우, 미셸 부케의 연기 역시 찬사받아 마땅할 테고요.


글·정미환 | 진행·이소진 | 디자인·김기한 | 도움·오앤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