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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컬쳐

예술과 비즈니스의 모범사례, 카니예 웨스트와 무라카미 다카시

by 하나은행 2014. 8. 13.
Hana 컬쳐

예술과 비즈니스의 모범사례, 카니예 웨스트와 무라카미 다카시

by 하나은행 2014. 8. 13.

미국의 유명한 힙합 뮤지션인 카니예 웨스트의 세 번째 앨범 은 웨스트에겐 보다 넓고 단단한 문화계에서의 입지를, 무라카미 다카시에겐 거대한 소통의 창구를 선물했다.

 

# 스타일리시한 뮤지션, 카니예 웨스트

 

2007년 발매된 카니예 웨스트의 3집 <Graduation>
2007년 발매된 카니예 웨스트의 3집

카니예 웨스트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 본업인 음악과 요즘엔 본업보다 더 많이 언급되는 그의 ‘스타일’일 것이다. 랩과 힙합에 정통한 마니아나 평론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의 음악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솔직히 내가 -그나마 즐겨듣는 음악은 밴드뮤직인- 그의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동네 조기축구 선수가 홍명보 감독에게 축구 전술을 얘기해주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감상자 입장에서라면, 상당히 듣기 편했던 초기 앨범에 비해 요즘의 음악은 조금은 난해해진 것도 사실이다. 

비트와 랩버스를 강조한 웨스트의 음악은 힙합과 친숙하지 않다면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정작 카니예 웨스트가 음악 잡지가 아니라 패션지에서 자주 다루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패션 잡지 독자들에게도 먹히기 때문이다. 남성 독자 는 카니예 웨스트처럼 입으려 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카니예 웨스트처럼 입으라고 하니 당연한 것 아닐까. 그것은 웨스트가 ‘스타일’을 뮤지션으로 거둬들인 어마어마한 돈과 명예 ‘랩머니’를 자랑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지 않기에 가능했다. 가난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나 이제 이만큼 돈 벌었어”라고 외치는 흑인 힙합 뮤지션 투팍의 베르사체 금 목걸이나 “난 브루클린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뉴욕에서 이만큼 성공했어. 부럽지?”라고 읊조리는 제이지의 <엠파이어 스테 이츠오브마인드>는 힙합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쿨하게 보이지 않는다.

카니예 웨스트는 다르다. 카니예 웨스트에겐 랩머니와는 다른 차원의 소구점이 필요했다. 스타일은 성공한 래퍼, 카니예에겐 일종의 문화적 정체성인 셈이다. 그는 시카고에서 자랐다. 딱히 힙합신의 중심이라 할 수 없는 호수의 도시에서 사업가와 교수 부모밑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이패션을 애호하는 기호’와 ‘미술에 대한 이해’ 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래퍼인 셈이다. 그에겐 원래부터 맥도널드보다 알리니아(시카고에 있는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에 자주 드나들 수 있는 돈이 있었다. 카니예 웨스트 패션은 플로리다 래퍼의 저지 스타일도, 서부쪽 래퍼의 치카노 스타일도, 뉴욕쪽 래퍼의 팀버랜드 신발도 아닌 모피와 시크한 선글라스, 끝내주는 실루엣의 슈트, 화려한 스니커즈 등 럭셔리에 가까웠다.

카니예 웨스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사람(혹은 브랜드)을 찾아낼 수 있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뛰어나다. 나이키, 아디다스, 루이 비통과 A.P.C 등 패션 브랜드 중에서 컬래버레이션 대상을 정하는 감각도 유독 발달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보다 대본을 잘 선택하는 배우가 더 대중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처럼, 웨스트의 이런 탁월한 재능은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한 앨범  얘기를 해보자. 미술을 전공한 웨스트가 무라카미를 원래 알고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둘의 매개체가 된 것은 명품 패션 브랜드 루이 비통일 확률이 높다. 루이 비통의 패션 디렉터였던 마크 제이콥스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해 출시한 ‘무라카미 백’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미 루이비통 마니아 로 명성이 자자했던 웨스트가 그를 눈여겨봤을 것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초기 프로모션 앨범 디자인 이미지. 곰이 쓰고 있는 비네팅 선글라스는 평소 카니예 웨스트가 즐겨 착용하던 소품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초기 프로모션 앨범 디자인 이미지. 곰이 쓰고 있는 비네팅 선글라스는 평소 카니예 웨스트가 즐겨 착용하던 소품이다.

 

사실 무라카미야 말로 기존 앨범 표지와 다른 결과물을 만들길 원했던 웨스트에겐 최고의 적임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라카미 다카시야말로 가장 ‘핫한’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또 무라카미가 일본인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고려됐을 것이다. 전 세계 1국가 1매장 원칙을 고수하는 패션 브랜드 슈프림이 오직 일본에만서너개의 매장을 개설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이라는 시장은 힙합과 패션문화에선 결코 놓칠 수 없는 거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미 전 세계 컬렉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예술계의 슈퍼스타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예술계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 대중이 미술품에 쉽게 접근하고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거다.

그의 작품 중엔 무려 1,520만 달러에 팔린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도 있지만 루이비통과 협업해 생산한 액세서리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인 몇 천달러 정도이며, 봉제 장난감은 단돈 25파운드면 구매 할 수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카니예의 제안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은 이런 그의 예술 철학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래미상 수상이자며 적어도 밀리언셀러가 보장되는 뮤지션의 앨범 표지라면, 말 그대로 백만의 대중이 무라카미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소통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탁월한 쇼 비즈니스 감각과 예술확산의 목표가 만난 앨범의 결과는? 3개의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고, 전 세계 3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 중에는 웨스트의 음악을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오직 앨범 표지를 소유할 목적으로 구매하기도 했다. 명백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 둔 셈이다. 이런 성공을 바라본 ‘웨스트의 스타일 라이벌’ 패럴 윌리엄스는 다음해 무라카미와 협업했다. 경쟁자의 작품을 연이어 맡는다는건 어쩌면 ‘상도’에 벗어난 것일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픈 무라카미는 딱히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협업이 난무하는 요즘에도 앨범 표지는 여전히 매력적인 캔버스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예술가와 협업한 앨범 표지는 계속 나올 것이다. 칼럼을 끝맺으면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3인치 작가’ 강익중의 작품 처럼 지금까지 나온 예술가들과 협업한 앨범 표지들을 모아 거대한 작 품을 만드는 것을 말이다. 만약 이 상상이 실현된다면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는 2007년에 나온 카니예 웨스트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이 가장 눈에 띌 게 틀림없다.


글·김현태 | 진행·이소진 | 디자인·김기한 | 도움·유니버설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