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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피플

세상과 교감하는 예술가의 작업실

by 하나은행 2015. 3. 30.
Hana 피플

세상과 교감하는 예술가의 작업실

by 하나은행 2015. 3. 30.

마이클 베빌라쿠아(Michael Bevilacqua) 그는 롱비치 주립대학과 산타바바라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예술과 기술을 공부했다. 베이징, 코펜하겐, 밀라노, 도쿄,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뉴욕 등 세계 각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일본 미쓰니 컬렉션,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그리스 데스테 재단, 노르웨이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 미국 휘트니 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마이클 베빌라쿠아의 작업실은 예술가가 고독하게 틀어박혀 지내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새로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열린 공간이자 동시대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창작의 열정이 교류하는 장소다. 컬렉션, 음악, 사람 등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는 그를 뉴욕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내가 정식으로 마이클 베빌라쿠아를 만나게 된 것은 약 7년 전쯤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보다도 훨씬 전 제프리 다이치 갤러리에서 열렸던 그의 전시를 보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이클은 당시 눈에 띄는 신진 작가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재능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해가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해학, 인간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의 이해가 담겨 있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마이클은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작업에 몰두하는 예술가가 아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일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늘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나 역시 그를 통해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여럿 소개받았는데 이제는 작품을 구입하고 싶어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치솟은 마크 플루드(Mark Flood)가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작품을 사랑하는 컬렉터이자 동시에 예술가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끊이지 않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찾아 항상 도전하는 작가다.

 

뉴욕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있는 그의 집. 창문 옆에 걸린 두 장의 사진은 뉴욕 아티스트, 크리스토퍼 치아파(Christopher Chiappa)의 작품이다. 거실 가운데 있는 커피 테이블은 맞춤 제작한 것인데 그가 요즘 읽는다는 밴드 ‘도어즈’의 멤버 짐 모리슨의 일대기 《Nobody gets out here alive》가 놓여 있다. 소파는 19세기 때 제작된 것을 고쳐 쓴다.

# 낙서쟁이에게 허락된 창작의 자유


마이클은 자신이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아티스트가 되기를 소망했다고 말했다. “유년 시절에는 책상이나 책 표지에 그림을 그려대곤 해서 친구들에게 낙서쟁이로 불렸죠. 캘리포니아의 작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들은 학생이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어요.

덕분에 펑크 록 밴드 라몬즈(Ramones), 데보(DEVO), 더 클래시(The Clash)와 같은 가수들의 앨범 커버를 바틱 염색(염색이 안 되게 할 부분에 왁스를 발라 무늬를 내는 염색법)을 이용해 제작할 수 있었어요.” 그는 특별한 계기를 통해 갑작스럽게 예술을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지지하는 가정 분위기나 환경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좌) 패스트푸드로 해골 형상을 만드는 크리스토퍼의 작품 앞에 놓인 오브제에서 그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쿠키를 먹는 캐릭터는 미국 애니메이션, 〈세서미 스트리트〉의 주인공이다. (우)해골 모양의 촛대는 뉴 멕시코에서 온 것이다. 그 옆의 점토 조각은 마르셀로의 작품이다.

# 컬렉션을 통해 얻는 예술의 영감


그는 지난 20여 년간 작가로서 작품을 만들었지만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구매하기도 하고 서로의 작품을 교환하기도 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영감을 받기도 하고, 예술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 좋았어요. 최근에는 서아프리카 부족인 도곤족의 카나가(Dogon Kanaga) 가면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카나가 가면은 전설의 새, 코몬도가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고 만들어졌다고 해요. 윗부분은 하늘의 신을 의미하고 아랫부분은 땅의 신을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만물의 신 ‘엠마’를 상징하는데 주로 장례식과 참회식 때 사용되는 가면이죠.”

 

그가 주로 텔레비전을 보는 공간. 덴마크 콘솔과 19세기에 만들어진 빈티지한 윙백 의자가 놓여 있다. 문 뒤로 보이는 스케치 작품은 그의 〈우화의 재구성〉 시리즈 작품 중 하나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살던 시절부터 만화나 소설, 록 앨범, 광고 등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는 작가 짐 쇼(Jim Shaw), 거칠게 그은 선들로 잔혹함과 우스꽝스러움이 공존하는 일러스트를 그리는 레이먼드 펫티본(Raymond Pettibon), 사진, 조각, 설치, 영화, 비디오, 공연 등으로 어둠과 공포를 강조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마르니 웨버(Marnie Weber)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팅했다. 

이후 뉴욕에서 살면서 운 좋게도 마크 플루드(Mark Flood), 도로시 이안노네(Dorothy Iannone), 리오 개빈(Leo Gabin), 마이크 부쉐(Mike Bouchet) 등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가 구입한 작품의 작가들 중 몇몇은 나의 친구들이기도 한데 그들의 작품을 날마다 바라보며 영감을 찾기도 합니다. 또 수많은 아티스트가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것처럼 저도 요즘은 아프리카 미술에 빠져 지내고 있어요.”

 


# 과거, 현재, 미래


초창기 마이클은 레이싱용 개조 자동차의 페인팅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매우 편평한 그래픽 위에 밴드 로고들을 그린 작업들이었다.

“제 작업들은 평소 듣는 음악이나 새롭게 자극 받는 영감에 의해 계속 변화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제 경력과 삶의 큰 그림을 그려가는 것에 더욱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죠.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삶을 느끼고, 또 그들이 각자의 삶을 잘 살아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에 크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이클의 작품들은 마이클 자신, 그의 신체, 주변 환경 등 모든 요소들을 담아내고 있다. 최근 작품들을 보면 스프레이로 그린 바탕이 등장한다. 추상회화의 대가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작업은 표면의 단어, 문구와 함께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작품에 쓰인 문장은 대부분 뮤지션인 라나 델 레이(Lanadel Rey)와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가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저는 무언가에 집착하게 되면 완전히 몰입하는 편인데 이 작품을 하면서 가장 위대한 색면 화가 중 한 명인 마크 로스코에 관련된 모든 책들을 읽었습니다.”

마이클은 다음 작품의 콘셉트 역시 이미 정해졌다고 이야기했다. 독일 밴드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3D 이미지를 활용한 콘서트 공연을 본 후 영감을 얻었고, 어떻게 이 기술을 자신의 작업에 적용시킬지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새로운 작업은 제가 처음 시도하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 고수해온 강한 느낌의 회화와 카나가 가면, 크라프트베르크의 댄스 비트에서 영감을 받은 컴퓨터 이미지, 그리드를 함께 적용해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좌) 동료 작가인 마크 플루드의 작품, 가 스튜디오 문 위에 걸려 있다. (우)브루클린 부시윅에 꾸려진 그의 작업실. 나날이 치솟는 집값에 뉴욕의 예술가들은 요즘 새로운 터전인 부시윅으로 몰리고 있다. 그의 작업대에는 작업에 쓰는 스프레이, 선풍기, 라디오 등으로 빈틈이 없다.

# 협업에서 얻는 경험 


마이클은 개인적으로 협업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스 패션 디자이너 안젤로 프렌조(Angelo Frentzos)와 의상의 라인 디자인을, 히로 클라크(Hiro Clark),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와 티셔츠 디자인을,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와 협업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트 딜러이자 큐레이터인 다이치와 함께한 작업이 기억에 남네요. 저는 레이싱 차를 만들어 회화 작품들과 함께 전시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문제는 자동차가 갤러리 현관문을 통과할 수 없었어요. 그러자 다이치는 큰 비용을 추가로 들여 문을 통과시킬 수 있게 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또 한번은 덴마크에 있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루이지애나 컨템포러리(Louisiana Contemporary)’ 전에 첫 아티스트로 선정됐을 때였어요. 커다란 미술관 벽을 따라 거대한 회화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 프로젝트 역시 미술관의 큰 협조가 없었다면 진행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만든 그의 새로운 작품. 이탈리아 마시모 카라시 갤러리에서 열린 전에 선보였던 작품이다

# 그가 꿈꾸는 새로운 도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관람객이 그의 작품 앞에서 큰 관심을 보이곤 한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을 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전시 일정을 묻자 그는 5년 안에 몇 개의 미술관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고 답했다. 만약 다른 작가와 듀오전을 할 수 있다면 조각가 매튜 로나이(Mathew Ronay)를 꼽는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조만간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 대표 작가로 선정된다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제 작업이 매우 미국적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제 작품을 깊이 이해하고 또 지지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유럽과 아시아에서 회고전을하고 싶습니다.” 

현재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는 마이클의 작품 2점이 소장되어 있는데, 내년 미술관이 새로 신축되는 일정에 맞춰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날마다 작업실에 가는 것이 매일의 계획이자 새로운 도전이겠지요.”


글·강희경 | 진행·이소진 | 디자인·김재석 | 사진·강재석 | 번역편집·최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