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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컬쳐

예술가들의 아지트, 카페를 아시나요?

by 하나은행 2014. 11. 5.
Hana 컬쳐

예술가들의 아지트, 카페를 아시나요?

by 하나은행 2014. 11. 5.

‘The nignt cafe’, Vincent van Gogh, oil on canvas, 89×70cm, 1888, Yale University Art Gallery, New Haven, Connecticut, USA

18세기 프랑스 소설가 레티프 드 라 브레톤은 《파리의 밤》에서 카페를 찾는 사람을 네 종류로 분석해놓았습니다. 여자를 찾는 사람, 낙오자, 뜨내기 그리고 붙박이 손님이었지요. 대부분이 인연을 찾거나 고급 카페에서 쫓겨난 이들입니다. 붙박이처럼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카페를 지키던 이들은 파리의 예술가들이었습니다. 카페에는 따뜻한 커피와 술 그리고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페에서 그들은 교류하고 발전했습니다. 카페는 예술가들이 모이고, 영감을 얻고, 때로는 안식을 얻는 공간이었습니다.

 


# 커피 한 잔에 담긴 시절

‘At the Cafe-Concert’, Edouard Manet, oil on canvas, 47.3×39.1cm, 1879, Walters Art Gallery, Baltimore, MD, USA

페르시아풍의 분수가 장식된 집 안에서 한 남자가 의자에 기대앉아 있습니다. 남자는 무릎을 꿇은 하인들에게 시중을 받으며 뜨겁고 쓴 커피를 마십니다. 프랑스에 거주하던 터키 외교가 술래이만 아가입니다. 부유했던 그는 파리에 대저택을 구입했습니다. 터키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집에서 상류층과 귀족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지요. 오리엔트 문화 양식이 고스란히 밴 그의 집과 커피는 파리의 귀족, 특히 여성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사교층을 중심으로 커피는 곧 유행되었고 수입되기에 이릅니다. 커피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음료로 자리 잡자 카페는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홍차 문화를 즐기고 있던 까닭에 쓴 커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19세기는 그야말로 카페의 전성기였습니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는 주인의 이름 딴 ‘르 프로코프’입니다. 카페 ‘르 프로코프’는 샹들리에와 대리석으로 된 탁자 등 화려한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맞은편에는 파리 국립극장 ‘테아트르 프랑세(Theatre Francis)’가 있어 오페라를 즐기고 나오던 관객들이 꼭 들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카페 ‘르 프로코프’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고 그 명성에 힘입어 새로운 카페들이 우후죽순 문을 열었습니다. ‘안느 루즈’, ‘마를리통’, ‘라팽 아질’ 그리고 ‘뒤 마고’라는 이름의 카페들이 뒤이어 카페 전성시대를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카페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릅니다. 고흐의 <밤의 카페>를 보면, 커다란 당구대를 중심으로 벽을 따라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현재의 카페 풍경과는 다른 낯선 모습이지만 19세기 카페의 의미를 생각하면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 시절 카페는 단순히 커피만을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라 당구를 치거나 게임을 할 수 있으며, 커피 이외에도 술이나 식사까지 제공하는 종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페는 한층 화려해졌고 전속 가수와 연주자를 두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던 덕에 철학가, 문학가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들을 모두 한 공간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렇듯 카페는 예술가들에게 커피 한 잔으로 쉼터와 사람과의 만남까지 얻을 수 있는, 쉽게 떠날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 가난한 예술가들의 안식처

‘Vichy’, Konstantin Korovin, oil on canvas, 69×97cm, 1911

파리에는 수많은 예술가가 있었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그들에게 파리의 집값은 너무나도 비쌌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캔버스조차 펼 수 없을 만큼 좁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좁은 집에서 벗어나 카페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무명 화가는 이젤과 팔레트 등 그림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카페 한쪽으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예술가들은 좁고 답답한 작업실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있는 카페에서 하루종일 창밖을 바라보며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습니다. 콘스탄틴 코로빈의 그림 <비시>를 보면 깜깜한 파리의 거리에서 카페만 밝게 빛을 내고 있습니다. 19세기의 카페는 문을 닫고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예술가들은 낮이나 밤이나 어느 때고 드나들며 위안을 찾았습니다.

 

‘Griensteidl cafe' in Vienna’, Reinhold Volkel, oil on canvas, 61×46 cm, 1896

카페는 예술가들의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가난한 그들에게 카페는 겨울날 난방비와 신문값까지도 아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언제나 따뜻했고 카페의 주인들은 따로 신문을 챙겨주기까지 했으니까요. 음식을 해결할 수 없게 되어도 그들은 카페를 찾았습니다. 카페 ‘라비옹’은 굶주린 그들이 카운터 위의 빵을 몰래 훔쳐 먹어도 모른 척하며 가난한 예술가들을 따뜻하게 맞았습니다 좀 더 뻔뻔한 예술가들은 수중에 한 푼도 없을지라도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떳떳하게 주문을 했습니다. 나중에 웨이터와 타협을 본 뒤 외상으로 남기면 그뿐이었고, 예술을 사랑하던 애호가들이 그들을 대신해 값을 지불하기도 했습니다. 고흐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당시 가난한 예술가의 궁핍한 처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밤이슬을 피할 돈이 없을 때, 너무나 취해 다른 곳에서 문전박대당할 때 카페에서 안식처를 찾는다.’ 당시 예술가가 명성과 부를 얻기 위해서는 살롱전에서 인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고지식한 그림만 인정했던 살롱전에서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하던 예술가들이 낙선하는 일은 비일비재했지요. 그런 그들에게 카페는 그림을 선보일 수 있는 유일한 전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선보일 수 없었던 자신의 그림이 안쓰러워 그들은 카페 벽에 작품을 걸기도 했으니까요. 인상주의 화가들도 종종 카페에 그들의 낙선된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그렇게 카페는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그들의 그림까지도 어루만지는 공간이었습니다.

 


# 열기 가득한 영감의 장소

‘Feast Scene’, Giovanni Boldini, oil on canvas, 96×104cm, 1889

‘두 개의 중국 도자기 인형’이라는 뜻의 카페 ‘뒤 마고’는 19세기 프랑스 카페들 중 손꼽히던 장소로 지금까지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으로 불리는 철학가 사르트르, 생텍쥐페리, 랭보, 헤밍웨이와 카뮈 등 문인들이 단골로 모이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커피 한 잔으로 몇 시간씩 열띤 토론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카뮈는 카페에 가득한 토론 열기 속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작은 원탁 앞에 앉아 수첩에 깨알 같은 글을 채워나갔습니다. 카뮈의 대표적인 저서 《이방인》도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화가들이라고 예외가 있었을까요. 피카소에게 카페는 예술적으로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피카소는 조르주 브라크와 카페를 자주 찾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브라크와 함께 예술적 영감을 나누던 피카소가 새로운 예술 사조인 입체주의를 탄생시켰던 곳도 바로 카페 ‘뒤 마고’였습니다. 토론이 주로 오가던 카페 ‘뒤 마고’와는 달리 화려한 공연이 펼쳐지던 카페 또한 예술가들의 영감의 장소로 손꼽혔습니다. 마네의 <카페 콩세르에서>를 보면 그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 쌍의 남녀가 앉아 있습니다. 뒤 배경으로 맥주를 들이켜는 여급과 무희가 왁자지껄한 카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앞쪽의 이 남녀는 맥주를 앞에 두고 무언가에 홀린 듯합니다. 여자는 생각에 잠겼고 남자는 고개까지 돌려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카페 ‘콩세르’는 가수와 무희가 공연을 하고 애크러배틱까지 선보이던 화려한 카페였습니다. 아마 그림 속의 이 남녀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공연에 흠뻑 취했을 겁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파리는 ‘벨 에포크,’ 즉 ‘좋은 시대’라고 불릴 만큼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풍요와 평화를 누렸습니다. 예술과 문화가 번창하고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림의 소재를 찾는 예술가들에게 카페는 그야말로 그들이 바라는 장소였습니다. 카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넘쳐흘렀습니다. 예술가들이 카페를 자주 찾은 것은 무엇보다 다채로운 삶을 그려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페에는 춤추는 무희의 삶이 있었고, 노동에 찌든 노동자들의 삶과 정치와 문화를 말하는 지식인들의 삶이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문학가들에게는 소설 속 인물로, 예술가들에게 작품 속 모델로 영감을 자극했던 것이지요. 예술가들은 변화하고 있는 근대 도시 파리의 성실한 관찰자 역할을 했으며, 카페는 새로운 도시 문화와 군중의 모습을 화폭에 쉼 없이 담아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글·김예솔 | 디자인·김진영 | 참고 도서·《카페를 사랑한 그들》(효형출판)